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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가장 무서워하는 정치인 "꽁꽁 언 한·일관계 내가 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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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65·사진) 의원은 일본 자민당의 5대 파벌 시스이카이(志帥<4F1A>)의 총수다. 연성화해가는 자민당 파벌 내에서 ‘마지막 보스’로 불린다. 묵직한 인상에 선이 굵어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그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와 행동을 함께하다 2003년 자민당에 복당했다. 그런 전력에도 여전히 당의 중심에 우뚝 선 파워의 원천은 타고난 보스 기질이다. 남들이 움츠릴 때 고개를 들고 행동한다.

 예컨대 아베 총리가 지난해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해 2020년 여름 올림픽의 도쿄 개최를 호소하는 연설을 수차례 준비한다는 사실을 듣고 “그렇게 (맹)연습해서 갈 정도면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도 연설 좀 연습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비판했다. 주변국에 대한 외교를 소홀히 하는 아베 총리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런 니카이 의원이 한·일 관계 개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작은 다음 달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NHK심포니오케스트라 한국 공연(주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중앙일보·일본국제교류기금)이다. 정치가 꽉 막혀 있는 만큼 문화 교류를 통해 일단 양국 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그가 깃발을 꽂자 그의 뜻에 호응하는 250명의 후원자가 “공연을 보러 한국에 가겠다”고 나섰다.

 27일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털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결국 비서관이 들어와 “기다리고 계시는 미에(三重)현 지사님이 이제는 돌아가시겠답니다”란 통보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번 공연은 어떻게 성사됐나.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 NHK 연주회를 서울에서 하려 하는데 일본과 공동 주최를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해 왔다. 박 회장이 오래전부터 문화 교류에 힘써온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총리 관저, 관련 단체와 상의했다. 당시 2013 회계연도 말(2014년 3월 말)이 임박해 예산 따기가 힘들었지만 아베 총리도 이런 좋은 일은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해 금호아시아나와 일본이 예산을 분담하기로 했다. 한국이 세월호 사고로 힘든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이웃나라로서 아픔을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변 인사들이 자비를 내서라도 한국에 가겠다고 모여들었다. 이렇게 한·일 관계 개선을 갈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모처럼의 기회인 만큼 행사 팸플릿에는 한글과 일본어 설명을 같이 넣고 양국 대사의 우호 메시지도 담자고 제안했다. 우리 모두 이런 지혜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 세월호 사고로 신중론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시기적으로 어떨까 하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난 이병기 주일 대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첫째, 이럴 때일수록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진정한 위로를 하는 것이 좋다(NHK교향악단은 추모곡을 준비할 예정이다). 둘째, 양국 관계에 구름이 끼어있을 때 이를 걷어내기 위해 나서야 하는 게 정치다. 나도 현재 중의원 예산위원장인데 국회 회기 중이라 원칙적으로 외국에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허락을 얻어 나가려 한다.”

 - 위안부 문제로 양국 관계가 최악이다.

 “일본의 젊은 국회의원들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다. 머리로는 책이나 신문을 통해 알지만 실제(가슴)로는 모른다. 위안부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게 다 좋다. 미국까지 (자기 편 만들려고) 구슬려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런다고 미국이 중재안을 낼 것 같나. 미국도 본심은 내 쪽에 그런 문제 좀 가져오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또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이 대목부터 니카이 의원은 탁자를 손으로 치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난 일·한의원연맹 측에 ‘폼만 잡지 말고 지금 뭔가 행동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너무나 불만스럽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선봉에 서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스타트를 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도 이번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니카이 의원은 이번 행사를 위해 1장의 기사 스크랩을 준비했다고 한다. 2010년 그의 지역구인 와카야마(和歌山)현에 세운 김충선 장군의 기념비 관련 기사다.

김충선 장군은 원래 사야카(沙也可)란 이름의 일본 장수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총부대를 이끌고 왔다 “이 싸움은 명분이 없다”며 단 한 차례의 전투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투항한 뒤 왜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선조가 ‘김해 김씨’ 본관을 내렸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후손은 7000여 명에 달한다. 후손들의 집성촌이 우록동(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소재)에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옛 지역구다. “적군에 투항해 총구를 거꾸로 돌린 장수를 기념까지 했듯 서로의 증오를 우호로 바꾸어 가자”는 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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