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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투기는 공적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남산중턱에 자리잡은 D음식점. 그 한구석에서는 주말마다 조그마한 계모임이 벌어진다 .계원이래야 6명 무역회사 중역인 L씨, 은행중견간부인 P씨 ,정부중앙부서의 국장급인 C씨 ,그리고 변호사인 A씨, 여기에다 증권회사 지점장인 K씨와 부동산소개업자인 J씨 등이다 .나이가 비슷해 언뜻 보아서는 동창회 모임 같지만 얘기내용은 엉뚱하다. 증권시세가 앞으로 큰 변동이 없을 것 같고 「아파트」도 청약예금순위별 추첨제가 실시돼 경기가 예전만 못할 것 같으니 강북의 단독주택이 투자대상으로 어떻겠느냐는 것.
일단 초점이 모아지자 각자는 그 나름대로의 정보를 늘어놓는다. 설왕설래 결국 집 값이 몇 년간 별로 오르지 않았던 강북의 Y동을 중심으로 살집을 물색하자는 데로 결론이 내려진다.
이른바 투기성자금인 「핫·머니」가 최근에 와서는 이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투기계라고나 할까 .이러한 모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늙은이의 소일거리였던 복덕방이 자취를 감춘지도 오래. 대학을 나온 쌩쌩한 친구들이 자가용을 몰며 기동력을 발휘한다.
국세청이「아파트」투기의 본보기로 세금을 추징키로 한 아세아부동산은 6개의 지점망에 8대의 승용차를 활용했다 더우기 사장인 K씨는 K대출신의 29세였고 18개월 동안 1백22억원의 거래실적을 올렸다.
「핫·머니」는 이윤을 쫓는다. 투자대상을 찾지 못할 때는 단 며칠간이라도 이율이 가장 높은 단자회사로 간다. 정부가 제도를 바꾸면 바꾸는 대로 청약대금으로, 부동산으로 날쌔게 넘나든다.
과연 이 같은 부동자금은 얼마나 될까 작년 6월17일 대자개발 등 4개 업체의 주식공모와 한양「아파트」공개추첨 때 각 창구에 몰려든 청약자금은 무려 2천7백69역원에 달해 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를 미루어 당시 부동자금의 규모는 2천억 원정도 일 것이라는게 거의 공인되다시피 됐다.
그 외에도 국내생산을 동반치 않는 해외부문에서의 통화증발이 계속됐고 투기자금의 증식분이 다시 부동자금으로 재투입 됐을 것인 만큼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현재의 규모는 3천억원 선이란 추계가 나오고 있다(S증권K사장). 이중 3분의1은 가계여유자금 ,3분의1은 기업일시 여유자금, 그리고 나머지는 상습적인 투기자금이란 분석도 있다(S은행P이사).
「핫·머니」가 지나가는 곳에는 상처가 난다 .시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고 결국 「막차」를 타게되는 선량한 투자자만 손해를 입는다. 그러나 「막차」손님은 투기 판에 뛰어든 죄라도 있지 상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전체국민에게 확산된다.
서울근교인 태릉에서 조상이 물려준 과수원을 경영하던 김삼준씨는 근처땅값이 평당 10만원이상으로 오르자 용단을 내렸다
과수원을 하느니 땅을 팔아 사채놀이라도 하는 것이 수익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에서 과수원을 팔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미 강남지역의 배 밭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이젠 태릉의 먹꼴배 맛을 보게될 날도 얼마 남지 앉았다. 「비닐·하우스」도 점차 줄어든다 .없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비싼 땅에서 생산된 채소 값은 예전과는 달라진다.
오른 땅값을 감안, 수지를 맞추려면 값은 올라 갈수 밖에 없다. 그뿐인가 .상점의 전세 값도 오르고 공장 대지 값도 덩달아 뛰게되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값 ,가게에서 파는 물건값도 비싸지게 마련이다
투기에 따른 이득은 이런 경로로 결국은 전체소비자 부담으로 귀착되어지는 것이다.
투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인플레」의 악순환은 근절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부동산투기에 「인플레」대책의 초점을 맞춘 것은 적절한 대응책으로 풀이될 수 있다 남덕우 부총리는 『부동산투기를 해서 이익을 본만큼 손해를 보게 만들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으며 소득세법을 고칠 방침임을 밝혔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부의 단호한 실천이다. 투기이익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흡수하는 일은 정부가 마음먹기 따라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대한상의P이사)
투기의 근절은「인플레」의 가장 큰 적인「인플레·무드」를 진정시키는 첩경도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또한 빠른 기일 안에 물가안정이라는 절대명제에 대한 국민적「컨센서스」를 가져와야 된다(중앙대 박승 교수). 「인플레」이득자를 동경하고 쇠고기가 품귀상태가 되면 오히려 한 근이라도 더 사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그릇된 환상에서 국민각자가「인플레」를 막는 파수병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의연한 자세를 가지도록 해야한다는 뜻이다. 【이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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