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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외국소개 왜 잘 안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가와바마·야스나리」(천단강성)의 주요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 출판, 그로 하여금 「노벨」 문학상을 수상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에드워드·사이덴스티커」교수(미 「콤럼비아」대·일본문학)가 「펜·클럽」한국본부(회장 모윤숙) 초청으로 20일 우리 나라에 왔다.
「펜·클럽」한국 본부는 이날 저녁 서울 성동구 화양동 모회장 자택에서 백철 양명문 조병화 김종문 전광용 손소희 홍윤숙 김남조 전숙희 이정기 김우종 송영택씨 등 약 30명의 우리 문인들과 미대사관 문정관 「제임즈·호이트」씨(『용비어천가』 영역) 「유엔」군사령관 특별고문 「브루스·그랜트」씨(동서문화지에 『한중록』영역 연재) 등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진 미국인들을 초청, 번역출판 문제에 관한 「살롱·세미나」형식의 모임을 가졌다.
토론이 시작되기에 앞서 「사이덴스티커」교수는 짤막한 강연을 통해 번역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번역 출판이 어디서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번역 출판이 한국 안에서 되어 그 책이 외국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하여 주목을 끌었다. 「사이덴스티커」씨는 그 증거로서 그 자신이 「가와바따」 작품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전에도 「고 오단샤」(강담사)·「겐뀨샤」(연구사) 등 일본출판사들이 다루어 번역 출판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상기시켰다.
이 같은 「사이덴스티커」교수의 견해에 대해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문인들은 대부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소설가 전광용씨는 『한국문학의 가장 큰 고민은 우수한 번역자가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한국 문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에 애정을 가진 외국의 번역자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아직 그런 계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수필가 전숙희씨도 우선 번역 원고를 확보해 놓은 다음 출판사를 찾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보였고, 출판인 안춘근씨도 번역도 되지 않은 작품을 외국의 출판사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사이덴스티커」교수는 『외국출판사에 우리 나라에 이러이러한 작품이 있는데 번역 출만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어볼 만한 열의는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충고했다.
어떤 문인이 한국문학의 일본진출을 예로 들면서 『몇몇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고 한국작품을 번역 출판해 왔지만 그것이 한국문학을 알리는데 그다지 큰 구실을 못한 것을 보면 외국에서 번역 출판된다고 해서 다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사이덴스티커」교수는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지만 일본 번역이 국제성을 띤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영어권의 국가에서 출판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의 모임은 번역 문학의 발전을 위한 유익한 의견이 교환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번역에 관한 것이 이야기되려면 의당 언어의 문제가 앞서야 할텐데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이 장시간 동안 결론 없는 『번역자가 먼저냐, 출판사가 먼저냐』는 출판 문제만으로 옥신각신, 피차가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기에까지 이르러 실망을 주었다.
「사이덴스티커」교수의 의견에 대한 논리적 반론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저마다 두서없이 자기 의견만 내세운 우리 문인들의 탓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이덴스티커」교수가 우리 문인들의 의견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면서 문학과는 관계없는 공항에서 겪은 「한국의 나쁜 인상」 등을 들먹이는 바람에 분위기만 흐려지고 말았다.
「사이덴스티커」교수의 이 같은 「에티겟」도 문제였지만 더욱 눈에 거슬렸던 것은 영어 통역을 위해 김용권 교수(서강대·영문학)가 배석했는데도 발언한 많은 문인들이 「사이덴스티커」교수가 일본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일본말로 대화를 주고받은 것. 시인 S씨 등 몇몇 문인들은 『소위 글을 쓴다는 문인들이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도 아니고 상대방의 언어도 아닌 제3의 언어로 「자랑스럽게」이야기하다니 언어 도단』이라고 개탄했다.
「노벨」문학상을 향한 한국문단의 집약된 의지와 지혜는 아직도 먼거리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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