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또 무산 … "관피아 척결, 여야 밥그릇에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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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김영란법안(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후반기 국회 정무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가운데는 김용태 법안심사소위원장. [김경빈 기자]

정치권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한 ‘김영란법안’(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 처리가 무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김영란법안을 심의했지만 일부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달 말 정무위원들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법안은 후반기 국회 새 정무위원들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언제 처리할지 기약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김영란법은 공무원 내지 공공업무 관련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게 골자다.

 김영란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은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업계 이익을 반영한 청탁 등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당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얼굴 내비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어진다”며 “의원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세월호 참사 후 부각된 관피아의 고리를 끊기 위한 주요 방안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여론의 흐름 때문에 각 정당은 앞다투어 김영란법 처리를 말했지만 실제 논의에선 진전이 없었던 셈이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애초 법안 처리를 세월호 참사로 격앙된 민심을 그대로 반영해 서두르겠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조직 개편이 마무리된 후 시간을 갖고 논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법안 처리가 무산된 뒤 브리핑에서 “일부 사항에 대해선 여야가 합의했지만,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라 합의된 사항만 처리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며 “후반기 국회 정무위의 법안심사소위에 우리 의견을 반영토록 권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도 새로운 논쟁거리가 됐다. 이날 소위에서 여야는 주요 쟁점이었던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 범위를 국·공립 학교뿐 아니라 사립학교, 사립유치원으로 확대했다. 언론의 경우도 애초엔 KBS·EBS 등 정부출연 언론사만 적용하기로 했으나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로 확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럴 경우 김영란법안의 직접 대상자는 186만 명이고,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550만~1786만 명으로 늘어난다. 소위는 또 원안보다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던 ‘직무 관련성’에 관한 부분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입법예고안(원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따라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공직자와 배우자, 직계 존비속까지 직무 관련자와 계약이나 거래, 용역 제공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청탁 금지 부분에선 ‘국민 청원권’이나 민원을 제기할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과 가족에게까지 법을 적용하는 건 헌법이 규정한 연좌제 금지에 저촉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5월 국회 처리가 불발로 끝난 이상 법안 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글=권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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