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교평준화, 이래도 좋은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 5대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고교평준화시책에 따른 무시험진학제도는 당초의 명분을 살려나가기는 커녕 갈수록 새로운 모순과 부작용만 낳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교평준화 시책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격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학생들의 학습의욕 감퇴와 학력저하를 가져오게 한데이어 이제는 또 같은 평준화지역 내에서도 다시 새로운 형태의 학교차까지 빚고 있으니 말이다.
78학년도 서울시내 전기명문대입시결과를 볼 때 평준화 이전의 명문공립고교는 그런대로 중간수준 이상의 합격자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립고교는 이들 명문대에 일약 1백명 선의 합격자룰 낸 학교가 있는 반면 예비고사에서조차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내지 못한 학교가 나타났다.
평준화시책에 따라 똑같은 수준의 학생을 추첨, 배정했는데도 합격자 구성비의 격차가 이렇듯 심한 것은 한마디로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고교평준화를 기하는데 전혀 무력한 것임을 입증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볼때 고교무시험 추첨진학제의 실시로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이제 분명히 서울·부산·대구·광주·인천 등 평준화지역 고졸생들임이 틀림없다.
이들 평준화지역 고졸생들은 5대도시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반적으로 부실한 교육→학력저하→예시합격률저하→명문대합격율 저조로 이어지는 모든 불이익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평준화지역 5대도시 고졸생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과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고교에 배정되고 난 뒤 우열반편성조차 금지된 가운데 기준없는 교육을 받느라고 불편이 크다. 그나마 어쩌다 질 낮은 학교에 배정될 경우 본고사는 커녕 예비고사 합격마저 어렵게 된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이보다 더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각 학교간의 우열격차현상이 여전한 가운데도 그나마 평준화 이전의 몇몇 명문공립이 비교적 우위현상을 나타낸 것은 교육시설이 좋은데다 노련한 교사가 재직하고, 신분보장이 잘돼있어 학생의 교과지도에 성의를 더 쏟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무시험추첨제 실시 후 새로운 일류고교로 자리를 굳힌 사립고교들도 노련한 교사의 확보와 학교측의 학력향상을 위한 공립고교 못지 않은 각별하고 성의있는 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임을 인식해야한다.
따라서 고교무시험진학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체고교의 시설·교구·교원의 3요소를 다같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평준화해야한다.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자신없는 일이라면 아예 추첨배정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한다.
이와 함께 날로 심각해져 가고있는 고교생의 전반적인 학력저하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연세대 교육연구소「팀」이 창안,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있는 EDP(교육발전연구)와 같은 과밀·이질학습집단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교육지도방법의 채택 등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EDP이론은 우리와 비슷한 개발도상국에서 폭넓게 적응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시범학교에 적용한 결과 평균점수가 52∼66점이던 학생들을 83∼95점까지 향상시킨 실적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제도의 도입·활용이나 근본적인 대책을 외면하고 이미 한계성이 명백해진 잘못된 제도의 무비판적 존속을 고집한다는 것은 국민교육에 중대한 차질을 야기하게 될뿐 아니라 교육본래의 목적에도 역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가백년대계로서의 교육정책은 어떤 명분으로도 퇴행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문제다.
이런 견지에서 고교무시험추첨진학제도 자체에 대한 문교당국의 좀더 적극적이고 전진적인 대응책이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