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대가 만드는 진짜 20대 드라마…이게 진짜라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취업 준비, 해외연수, 스펙 쌓기에 신경 쓰지 않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이것에 열중하지 않는 학생에 더 눈길이 간다. 99마리의 흰 양이 되기보다 1마리의 검은 양이 될 것을 선택한 용기가 대단하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진로 고민이 가장 많은 고학년(대학교 3,4학년)이지만 ‘스펙 쌓기’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만났다.

‘20대 우리들의 현실과 진실’ 담아내기 위해

“저 혼자 서울 올라와서 취업 준비 중인데, 계속 취업이 안 되니까…. 저도 제 꿈이 있어서요. … 스펙으로 붙는 건 자신 있어요. … 학벌 빼고, 여자라는 것도 빼면.”

“잠깐만, 괜찮은 척 쿨한 척, 그 ‘척하는 것’이 보이게 해줘. 행동은 억척스러워 보이지만 원래는 걱정도 상처도 있는 보통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게.”

페이크 다큐멘터리(극적 허구성이 없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출된 드라마) ‘취업 전쟁’의 촬영 현장. 강민구(27, 페이퍼필름 대표, 감독, 중앙대 4) 군의 꼼꼼한 디렉팅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대학 시절 중 가장 중요하다는 3, 4학년 겨울 방학이지만 페이퍼필름 제작팀의 촬영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이렇게 찍은 ‘취업 전쟁’은 오늘 웹 드라마 최초로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동시 개봉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바쁘니까 청춘이다!

‘취업전쟁’은 드라마 PD가 꿈인 강민구, 작가의 길을 가고 싶은 최선(22, 붐 오퍼레이터, 중앙대 3), 꿈을 찾고 있는 김수현(23, 음향감독/편집팀장, 중앙대 3), 배우를 꿈꾸는 구준모(24, 배우, 중앙대 4)·이유진(26, 배우, 졸업생)·이제연(26, 배우, 졸업생)·임교은(25, 배우, 영남대 4)·장해송(26, 배우, 고려대 3) 외 5명이 함께 만들었다.

꿈이 없다면 꿈을 찾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취업 전쟁터’에서 발버둥치는 20대의 자화상이 주요 내용이다. 감독을 맡은 강민구 군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식의 위로보다 우리가 처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어떤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20대들도 여러 부류로 나뉠 수 있는데 각 부류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통해 저마다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작품 속 건축학도 준영이는 여성 취업이 어려운 건축계에서 외모를 남성스럽게 바꿔가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지키려 애쓴다. ‘꿈같은 건 없다’는 학생들을 위해 꿈을 찾는 게 먼저라는 걸 알려주는 지영광이란 캐릭터도 있다. 지영광 역을 맡은 장해송 군은 “재벌 2세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광이 같은 학생도 꿈을 찾으려면 온실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슈퍼스타 K를 6번이나 낙방하고도 계속 도전하는 야생마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강민구 군은 “요즘 난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중, 고등학생들이 승자독식 구조를 그대로 머릿속에 가져가게 되는 게 싫어서 만든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페이퍼필름이 만든 우리들의 ‘취업전쟁’

강민구 군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 중에 왜 우리들 20대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는 없을까 늘 아쉬웠다”며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2년 강 군은 뜻이 맞는 친구들 4명과 페이퍼필름이라는 영화 제작팀을 꾸렸다. 현재 전국 50여개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연출부, 제작부, 촬영부, 음향부, 미술부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강 군은 “연극이나 영화를 전공하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페이퍼필름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매 학기 1차 서류, 2차 면접을 통해 인원을 모집하는데 선발 기준이 까다롭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면접 땐 참여 가능한 모든 멤버들이 모여 심사를 한다.

페이퍼필름의 데뷔작은 웹 시트콤 ‘대학생들’(2012)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네 명의 남자 대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솔직하게 그린 모큐멘터리다. 모큐멘터리란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패러디 효과를 내기 위해 연출된 영화나 드라마로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같은 개념이다.

남학생 셋, 여학생 셋을 중심으로 대학교 영자신문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대학생들 시즌 2’는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가 20만을 넘었다. 페이퍼필름은 이후 꾸준히 웹 드라마 ‘연애동화’, 독립영화 ‘이상한 나라의 옥남이’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모두 웹 공간에서 상영됐는데 대학생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직 돈도 충분치 않고, 그럴싸한 사무실도 없다. 팀 활동을 계속하려면 학업과 병행하느라 시간도 모자라다. 제작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기본, 때론 대출을 받기도 한다. 사무실이 없으니 촬영이 끝나도 장비 둘 곳이 없어 멤버 몇 명이 나눠서 보관한다.

“남들이 보는 시선을 신경 쓰기보단 인생의 주체인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요.” 이유진(26, 졸업생) 양의 말이다. 강민구 군은 “드라마 PD가 되는데 이 경험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도 어른이 된 후 ‘그 때 내 꿈은 이랬는데’라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구준모(24, 중앙대 4) 군은 “요즘 청춘들은 너무 내일만 계획한단 말이 있는데 전 오늘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다양하다. 한번은 음반사에 음원사용 문제를 상담하려고 갔다가 관계자로부터 ‘대학생이 이 가격을 낼 수 있겠냐’며 처음부터 무시만 당한 적도 있다. 반면 격려해주는 분들도 있어 든든하다. ‘대학생이 이런 것도 한다’며 장기하와 얼굴들, 조용필 음반사 쪽에서 드라마에 사용된 음악의 저작권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중년배우 분들이 무상으로 출연해 준적도 있다.

“어려운 점도 많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고,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고 한 마디라도 해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어요.”

강민구 군은 이 인터뷰가 끝나면 제작비를 벌기 위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집에 돌아가서는 편집 작업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발길은 가볍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다. 이들은 “바쁘니까 청춘”이라고 말한다.

안인경 중앙일보 모바일팀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