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300 → 200명, 민간 100 → 200명 … 공직 채용 대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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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고 말하고 나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참사 와중에 ‘관피아’라는 비판을 받은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 발표 직후 정부 조직·인사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박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우리 공직사회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림에 따라 조만간 공직 채용·인사제도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채용·인사제도 개혁의 대원칙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우선 폐쇄된 공직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더 많이 공직에 진입할 수 있도록 채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인재개발연구소장을 지낸 안승준 한양대 특임교수는 “삼성전자의 성공은 다양성과 균형의 원칙에 따라 우수인재를 수시로 뽑아 자부심을 느끼게 보상해주고 일을 못하면 상시 퇴출시키는 인사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다양성을 강조한 박 대통령은 5급공채(옛 행정고시)와 민간경력자채용(민경채·35세 연령제한) 비율을 5대 5로 맞춰가겠다고 했다. 이럴 경우 현재 연간 300명 규모로 뽑는 5급공채가 200명 수준으로 줄고, 100명 수준인 민경채가 200명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고시처럼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현행 고시제도는 공무원 신분 보장제도와 결합해 폐쇄적인 공직사회를 초래한 주범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급공채 축소에 대해 공직자들은 벌써 불만을 토로한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민간 기업보다 적은 월급을 감수하면서 공복(公僕)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고시 출신이 나쁜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것 같아 사기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1999년 도입된 개방형 충원(임용)제도도 대폭 손질된다. 각 부처 자율로 공모하는 바람에 이 제도는 외부 민간 전문가가 아니라 무능한 관료를 위한 승진과 재취업 통로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별도의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 민간 전문가를 공정하게 선발해 각 부처로 보내기로 했다. 다만 우수한 외부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3년 계약직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등 순환보직제도 손질하기로 했다. 그동안 비리 예방을 이유로 안전·소방·위생 등의 분야에서는 일정 기간만 근무하고 반드시 다른 보직으로 옮기도록 하는 순환보직제를 기계적으로 시행하는 바람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2년의 순환보직 기간을 3~4년으로 늘리고 순환보직 대상 직렬을 다양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전문성을 살리면서 부정부패를 막으려면 한 부처 안에서만 돌리지 말고 비슷한 업무를 다른 부처에서도 할 수 있도록 ‘안전 직군’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퇴직관료의 재취업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무능한 공무원의 퇴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중앙부처 공무원 26만 명 중 무능을 이유로 퇴출된 공직자는 11명뿐이었다. 이에 대해 KDI 김 연구위원은 “민간 기업에서라면 진작 퇴출됐을 무능한 공무원을 제대로 퇴출하지 않으니 대한민국의 정부 효율성이 160개국 중 117위에 그친다는 통계도 있다. 공직사회가 민간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세정·정종문 기자,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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