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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먹의 질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하루 1백만명 인파와 수백억의 돈이 흘러 다니는 명동의 치안은 명동파출소를 비롯해 중부서·서울시경·치안본부가 함께 맡고 있다. 술취한 대학생 5명만 길에서 노래를 불러도 제꺽 이를 말리는 순경이 달려오고 장발청년들은 파출소 앞을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빼야할 정도.
그러나 때로는 이런 법의 손길을 비껴난 또 하나의 「질서」가 명동을 어둡게 누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번모한 거리…일 없는 곳>
「명동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벌써 오래 전부터 독버섯처럼 뻗쳐있는 「주먹」의 세계. 이것도 명동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75년 12월 명동 한복판 「사보이·호텔」 「코피·숍」에서 대낮에 벌어진 집단 칼부림 사건은 바로 명동을 요리하려는 「주먹」들의 세력싸움이었다. 그러니까 화려한 거리 명동은 또 한길에서 엄청난 「주먹」의 다스림이 있다는 것인가.
한 때 명동의 술집 영업부장들은 하나같이 「어깨」두목들이 차지, 문지기에서부터 외상값 거둬들이는 일까지 도맡았었다. 명동이 유흥가론 「외상」이 많이 쌓이던 때였다.
그러나 요즘은 어른상대의 큰 술집들이 다 무교동으로 옮겨가고 젊은이 상대 술집은 이제 외상이 없는, 『별로 일이 없는 곳』이 돼버렸다.
75년 「사보이 사건」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명동에서 「주먹」들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두드러진 사건이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 70년대 초. 명동은 이들 관광객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이제 자리를 잡았다. 요즘 한창 재미를 보는 외제 물건집들, 음식점, 「호텔」이 모두 이들에게서 떨어지는 돈으로 움직인다고 할 정도로 명동에 일본인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요즘의 「주먹」들은 바로 여기에 큰 줄을 대고있다. 이른바 「현지처」라고 불리는 「여자」를 관광객들에게 소개해주고 구전을 먹는 일을 주축으로 유흥가와 외제품 거래에까지 그들은 「영업을 돌봐주고 돈을 받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
현재 명동을 주름잡는 「주먹」의 세력은 「신상사파」와 「번개파」로 모아진다. 「사보이 사건」을 벌인 양대 산맥이다.

<「영업」 도와주고 돈 받아>
자유당 시절 중앙극장 앞을 무대로 성장해 옛 시공관 주변의 황모씨 등을 물러 앉힌 「신상사파」는 골수 명동파. 그리고 「번개파」는 서울역과 북창동 골목에서 세력을 확장해 명동으로 진출했다.
이중 신상사파의 우두머리인 신씨는 과거와 같은 계보를 가진 조직폭력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명동에서 싸움만 났다하면 형사들이 찾아오지만 주먹세계에서 발을 씻은지 오래 됐다』 면서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까지야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 고 했다. 또한 자기의 이름을 파는 가짜 신상사까지 등장, 모호한 누명도 쓴다는 것. 어쨌든 이 두 파 주변에 있는 큰 주먹·작은 주먹은 어림잡아 1, 2백명씩. 이들은 술집에서 다방· 외제품 판매업소·「현지처」소개 등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한창 번성하는 증권투자에까지 손길을 뻗고 있는 중.
이 두 세력은 「사보이·호텔」주변을 장악하기 위해 당시 이곳을 쥐고있던 신상사파의 김모씨(36)를 번개파 10여명이 급습, 집단난타를 했던 것.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를 받게되자 이 두 파는 화해하여 지금까지 표면적으로는 조용하게 명동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범위도 세태의 변화와 함께 많이 달라지고 있다. 「택시」잡기 어려운 요즘에는 명동에 「자가용 영업」이 부쩍 늘어났고 그리하여 「주먹」들은 여기에서도 한몫을 한다. 손님을 끌고 이들을 자가용차에 소개해주는, 그리고 말썽이 나지 않게 처리를 「질서 있게」해 준다는 이른바 「주먹」의 영업이다.
최근에는 명동의 「주먹」들에게 「보디·가드」알선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이 등장했다.
돈 많은 사장, 이름있는 연예인들의 신변보호인 역할을 맡은 「주먹」들이 많아졌다. 때로는 운전사를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돈 많은 귀공자들에게 미녀들을 알선해주는 역할도 한다. 박동명의 경우도 명동출신의 「보디·가드」가 2, 3명이 고용됐었다.
연예인(주로 가수)들은 유명한 업소에 출연해 인기와 수입을 올리려고 「주먹」조직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주먹」들이 연예인을 앞잡이로 돈을 긁어내기도 한다.
명동이 증권가로 커감에 따라 이들은 현재 여기에 진출, 신주공모 때 발행회사나 증권회사에 압력을 넣어 배분을 얻어낸다. 어느 두목은 거액의 주주라는 소문도 있다.
옛날과 변함없이 해내는 명동 「주먹」의 돈벌이는 비록 가끔이지만 정치집회에 힘을 쓰는 일. 정치깡패라는 용어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요즘도 집회 때는 이들이 이용된다.

<옛말이 된 「정치깡패」>
작년 5월의 모당 전당대회 때 주류와 비주류가 당권각축을 벌이는 마당에서 「주먹」들은 각기 양파의 청년당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명동 「주먹」들은 주로 비주류에 고용됐었는데 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철저하게 「돈벌이」일뿐이다.
그러나 사회질서가 잡혀가면서 주먹들도 왕년의 수법대로는 살기가 어려워져 두목급들은 부업을 갖고 점차 방향전환을 모색한다.
신 모씨는 조그만 양품점을, 송 모씨는 튀김집을, 정 모씨는 술 도매상을 차렸다.
배짱과 의리만을 내세우며 거리를 지배하는 주먹들도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모양이지만 혹시 조무래기 주먹들이 예전의 주먹들을 선망하면서 명동을 흐려 놓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가시지 않고 있다.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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