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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편집은 내 묘비명 … 아직 그 제목을 못 달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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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함정훈 아시아경제 편집위원은 매일 새벽 일산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경의선 첫 차를 타고 충무로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 더 이상의 건강 비법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강정현 기자]

“뉴스의 쓰나미 속에선 ‘칼질’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함정훈(77) 아시아경제 편집위원(대기자)은 신문 제목처럼 한참 곱씹은 듯한 표현을 자주 썼다. 편집기자 생활을 오래 해서 생긴 ‘직업병’일까. 뉴스가 쏟아질수록 ‘잘 버려야’ 한다는 말도 했다. 뉴스를 선별하고 가치판단을 잘해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60년 부산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편집부장과 편집국장, 국민일보 편집국장, 전무 등을 지낸 원로 언론인이다. 편집기자 출신으로는 드물게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다. 70대인 그가 지난달 10일 다시 현역 편집기자로 복귀했다. 편집위원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를 했고, 면접 등 전형과정을 남들과 똑같이 거쳤다. 40~50대의 경력 편집기자 선발을 염두에 뒀던 회사 경영진은 예상치 못 했던 함 위원의 응모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전성기 시절에 ‘함빠꾸’란 별명으로 통했다. 후배들이 짜 온 지면이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퇴짜 시킨다고 해서다. 서울 충무로 아시아미디어타워 10층의 아시아경제 편집국에서 최근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그는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고 했다. 요즘엔 편집 리듬을 되살리면서 어깨 너머로 신문사 ‘분위기’를 열심히 파악 중이다. 그는 “머리로는 감이 오는데 아직 손이 안 따라가요”라고 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린단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여기 훌륭한 후배가 있어요. 지금은 ‘노인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게 싫어서 아직 내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존경하는 후배와 멋지게 배틀을 하고 싶어요.”

 편집기자는 신문 제작상 독자와 취재기자 사이에 있다. 취재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과 레이아웃을 결정하고 적정한 사진과 그래픽을 배치해 기사와 지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함 위원은 “편집은 크리에이티브”라고 했다. 그는 90년대 일명 ‘무자(無字)컷’ 등 파격적인 신문 편집으로 화제를 모았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1면 제목을 글자 없이 새까맣게 칠해버렸다. 신문 독자들이 인쇄사고 난 게 아니냐고 전화하기도 했다.

 그는 신문의 위기를 돌파하는 비결도 바로 편집에 있다고 했다. “다 알고 있는 뉴스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그게 신문의 활로입니다. 한국 신문이 죽으면 구텐베르크가 죽는 겁니다. 인터넷 신문도 편집자 정신이 필요해요. 요즘 인터넷 신문을 보면 편집이 실종됐어요. 창고처럼 죽 기사를 나열만 하면 그게 신문입니까, 창고업자지….”

 함 위원은 “윤전기를 거꾸로 돌려서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입사한 아시아경제의 편집과 사회면·국제면 등 뉴스의 칸막이를 없앤 중앙일보의 최근 지면개편을 거론했다. “반갑더군요. 익숙했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런 노력이 황혼기 신문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편집기자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내 마지막 편집은 내 묘비명일 겁니다. 그냥 ‘함정훈의 묘’라고만 하기는 좀 그렇고…. 아직 묘비 제목을 못 달았어요. 제목이 떠오를 때까진 일할 겁니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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