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늦어도 22일 전 담화 … 배석자 없이 홀로 발표할 가능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5호 06면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 청와대]

“(면담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전부 공개하는 게 좋겠네요.”

[세월호 한 달] 박 대통령 담화, 정국 분수령 될까

지난 16일 오후 청와대.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 17명과 1시간20여 분간 면담한 박근혜 대통령은,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렇게 지시했다. 당초 청와대 측은 면담 내용의 일부만 공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 대변인의 회견에서 면담 중 나오지 않았던 얘기들이 거론되자 박 대통령이 내용을 전부 알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2만8000여 자에 달하는 대화록을 공개했다.

박 대통령은 또 면담에서 나온 가족들의 요구 30여 개를 A4용지에 빼곡히 기록하고 관련 수석실에 조속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할 공원 확장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선 해당 공원이 그린벨트와 상당 부분 떨어져 확장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또 안산 단원고에 결원 교사들이 많으니 즉시 충원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선 교육 당국에 문의해 신임 교사들이 이미 임명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17일 오전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고 유족들의 요구 처리상황을 집중 검토했다. 또 유족들의 요구가 대국민 담화에 반영되도록 보완에 힘을 쏟고 있다.

유족 면담이 대국민 담화 신호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이날 면담은 유족과의 단순한 소통을 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면담에서 개각, 세월호 특검과 국정조사, 진상규명특별법과 부패방지법 통과 방침을 직접 밝혔다. 본인이 준비 중인 대국민담화의 윤곽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청와대와 가까운 여권 인사는 분석했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당초 세월호 사건 한 달을 맞는 지난 15일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 대신 세월호 유족들과 법률 지원 계약을 맺은 대한변협에 연락해 유족들을 16일 만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직접 피해자인 유족들과 먼저 대화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수순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이르면 19일, 늦어도 22일 이전에는 나올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담화엔 대국민사과와 책임자 처벌,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 제시, ‘관피아’ 척결과 국가 개조 선언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담화 장소는 청와대 본관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담화의 무게를 감안해 비서진이나 장관들 배석 없이 박 대통령 홀로 담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청와대와 가까운 여권 인사는 전했다. 그는 “그동안 청와대가 ‘대통령이 사과를 하더라도 대안을 마련한 뒤 할 것’을 강조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 대안에는 신임 총리나 개각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총리 후보에 대한 하마평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이나 이인제 의원 등 정무능력과 국민통합 이미지를 보유한 인사들로 압축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의 사의는 받아들였지만 아직은 사고 수습이 중요하다며 사표를 수리하지는 않은 상태”라며 담화에서 신임 총리의 윤곽을 언급할 가능성을 작게 보는 청와대 관계자도 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세월호 정국’이 6·4 지방선거 정국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월호 참사 직전 60%대로 치솟았던 박 대통령 지지율은 그 뒤 40%대로 하락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22일부터 지방선거 공식운동 기간이 개시되는 만큼 그 직전 이뤄질 박 대통령의 담화는 그의 리더십과 여당의 선거전략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진정성 어떻게 표현할지에 관심 쏠려
청와대 비서진에선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모 여론조사 업체의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 조사 결과를 매일 받아 보고, 천안함 폭침 등 과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 추이와 반등시점·요인 등을 조사 전문가 등에게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중앙SUNDAY가 접촉한 정치평론가 3명은 모두 “진정성이 담긴 사과와 상처 입은 민심을 달랠 감성적인 메시지가 담화의 관건이자 향후 정국을 수습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진도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하면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대국민담화에선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이번 사건이 자신의 ‘잘못’이자 ‘죄’라고 보다 분명하게 밝혀야 정국을 돌파할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사과가 담화 형식을 취하는 게 적절하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은 “담화는 권위주의 시절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포고’ 같은 느낌이 난다”며 “사과를 한다면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형식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권력자는 리스크가 따르는 회견이나 대화를 꺼리게 마련이나 이명박 대통령도 참모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매년 1~2차례는 반드시 국민과의 대화나 기자회견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한양대 특임교수도 “국민의 절망감이 큰 상황에서 대통령이 담화 형식으로 사과한다면 진정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며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전달하고 국민의 답답함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을 3~4시간씩 하면서 자신의 국정구상을 낱낱이 밝혔다”며 “사전 각본이 짜인 것이긴 했지만 담화보다는 국민의 궁금증을 많이 풀어줄 수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원래는 혁명적인 소통방식이었다. 대공황 시절인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라디오에서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30차례 한 게 담화의 시초다. 당시로선 첨단 매체였던 라디오를 통해 대통령이 난롯가에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는 분위기로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한 것 자체가 혁신적 발상이었다. 대통령을 신문 지면으로만 접해 온 국민은 그의 육성을 듣게 된 데 환호했다. 노변담화는 인기 쇼보다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담화는 혁신성을 잃게 됐다. 국내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변담화’를 시도했지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6월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지만 반응이 약하자 석 달 만에 15차례 연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 8개월 만인 2008년10월부터 퇴임 직전인 지난해 2월 18일까지 월요일 오전 격주마다 7~8분간 109차례 라디오(KBS1)로 대국민담화를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노변담화는 소재 고갈과 낮은 청취율, ‘전파낭비’란 야당의 공격에 시달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