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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피아의 선술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런던」 주재 본사 박중희 통신원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10일간 방문, 동구의 변모하고 있는 모습을 취재했다. 다음은 박 통신원의 현지 인상기이다. <편집자자주>
서독에서 기계를 팔러왔다가 빈자리가 하나 밖에 없어 나와 저녁 식탁을 같이하게된 「한츠」가 이 나라 소주 「플로도바」를 또 한잔 대짜로 꿀꺽하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너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한다. 『하수도』하니까 『하이드·파크」다』라고 대꾸다.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 그 한모퉁이 「스피커즈·코너」는 아무나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말을 지껄여도 괜찮고 실제 그런 왁작거리므로 이름난 장소다. 검둥이가 「흰둥이는 다잡아먹어도 좋을 놈들이다」라고 해대는가하면 공산당이 「자본주의를 때려 잡기 위해 세금을 내지 말자」고 떠벌리기도 하고 또 그래도 좋다.
물론 그렇다고 영국 바닥에서 흰둥이들이 잡아먹히지도 않고 법이 무서워서라도 세금을 안내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 공원 「스피커즈·코너」는 갖가지 인간들로 하여금 속이다 후련 하라고 욕구 불만을 그저 입으로 배설시키게 하는 약간의 사회적인 기능을 갖는다. 그러니까 일종의 수채 구멍의 구실을 한다고 봐도 좋은 셈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 「레스토랑·모스크바」 식당 겸 대 연회 「홀」이 「하이드·파크」다. 흥이 오르자 「밴드」가 「로크」곡들을 불어대고 실히 1백명쯤은 될 듯 싶은 식객들이「고고」춤으로 엉덩이들을 흔들어 댄다. 젊은 층들은 청바지, 악단들의 살짝「 히피」들 만으로도 여기를 어디 「마드리드」쯤의 명동이라고 한들 아주 애석할게 없는 분위기다. 그리고 흔히들 마셔대는 「코카·콜라」, 「말보로」 따위 양담배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이 꼴들인가? 하는게 서구에서 온 누구 나가 좀 신기하게 느끼는 거지만 염소 수염 「한츠」의 말을 빌자면 그게 그렇게 놀라 자빠질 일은 아니다.
「소피아」 또는 동구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장소와 광경들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하는 기능이나 존재하는 양태에서 「하이드·파크」「스피커즈·코너」와 그렇게 다른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배설 구멍을 뚫어 놓는다는 것은 사람의 피부 색깔, 가옥의 구조, 사회의 질서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필요한 거고, 또 일부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련도 된다.
「하이드·파크」가 그런 구멍에 의한 형태라면 이 「레스토랑·모스크바」도 하나의 구멍이다. 『하수도』하고 말끝에 덧붙이니까 「한츠」가 『너, 참, 오래간만에 옳은 소리 한번 한다』고 축가를 한다는 건지 제 「풀로도바」 한잔을 넘실넘실 따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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