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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순 넘은 독립유공자 부부가 「오동진 장군 일대기 집필」-대전의 문홍범·이신애씨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상해임시정부 직속 광복군사령부 총 영장을 지낸 혁혁한 항일독립투사 오동진 장군의 일대기가 독립유공자중 충남 유일의 생존자인 이신애 여사(87 대전시 대흥3동58의16)와 부군 문홍범씨(87) 부부에 의해 곧 출간돼 오장군의 항일공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여사는 3·1운동에 가담, 유관순 의사와 밥풀암호로 옥중 만세 공작을 했고 출감 뒤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는데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유공자.
이 여사 부군 문씨 역시 독립운동을 하던 중 대한청년회 연합회조직관계로 평양에서 오동진 장군을 만나게 되었고 이 여사는 3·1운동 때 오 장군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그러나 오 장군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마포 공주 형무소 등에서 10여년간 복역한끝에 44년 순국했으나 그 유해와 후손이 없어 63년3윌1일 우리나라 최고 건국공로훈장인 국민장 (중장)을 받고도 그냥 원호처에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딱한 사정을 안 이 여사 부부는 오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을 자신들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와 14년전부터 오 장군 유해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일대기를 집필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동안 각고의 보람도 없이 이 여사 부부는 오 장군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는데 실패하고 단지 공주교도소에서 옥사한 사실만 확인했다. 그것도 당시 공주교도소 의무관으로 있던 윤민섭씨(문씨의 친구 10여년전 작고)를 공주군 공주읍 봉황동에서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들은 것.
오 장군의 일대기는 5집으로 구성되어있다.
제1집은 항일투쟁심이 강하여 일본인 학교를 다니지 않고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평양 대성사범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대한청년연합회를 조직하여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던 활동이 실려있다.
제2집에서는 상해임시정부 직속인 광복군사령부의 설치경위와 그 총 영장으로 활동한 독립군시절의 항쟁활동을 자세히 기록했다.
제3집에서 5집까지는 오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인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무려 3만5천장의 재판기록을 남긴 끝에 평양나심법원에서 무기형을 받고 마포형무소와 공주형무소에서 10여년간 복역 끝에 44년 55세를 일기로 옥사했다는 내용을 생생하게 그리고있다.
원고3백장의 오 장군 일대기를 탈고한 독립투사 부부는 『참다운 독립운동 투사인 오동진 장군의 숭고한 얼과 업적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후손들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며 오 장군의 공적비만 건립되면 조용 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울먹인다. <대전=이흥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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