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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양정수<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은 공정한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법이 부단히 추구하고 구현코자 하는 것은 정의이며 법의 생명은 공정한 운영에 달려 있다는 것이 법조인의 한사람으로 평생토록 지녀 온 소신이다.
이른바「박동선 사건」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측의 집요한 박씨 인도요청과 마침내 그에 대한 연방 대 배심의 기소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본인은 미국정부와 미국사법당국이 과연「정의와 공정」이라는 법 정신에 입각하여 이번 사건을 처리해 가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박동선씨에 대한 미국연방 대 배심의 기소 결정에 몇 가지 의문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첫째는 기소사실이 특정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에 대한 기소사실, 특히 수뢰부분(기소사실 제2점과 제3점)을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그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를 수뢰하였는가에 대한 특정이 되어 있지 않고 막연하게 1967년부터 1974년 12윌31일까지 얼마를 수뢰하였다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기소사실만으로 문제된 수뢰가 1회에 이루어진 것인지, 또는 몇 회에 걸쳐 있었던 것인지, 또한 수뢰 자로 지목된「리처드·해너」와의 사이에 위기간 중 여러 차례 금전거래가 있었다면 그 중 어느 부분이 수뢰로 될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피고인으로 하여금 공판 정에서 제시할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이나 항변 등 방어방법을 미리 준비하게 하고, 똑같은 범죄사실에 대하여 이중기소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기소장에는 피고인이 어떤 특정한 행위나 사실로 기소되는지 알 수 있도록 일시·장소·범행 등을 특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미국법원의 일관된 태도로 알고 있다.

<막연한 기소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최고 징역 15년이나 과할 수 있는 중죄인 증여 죄의 혐의를 지우는 마당에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막연한 사실만으로 기소한 것은 미국 사직당국이 피고인에 대한 모든 증거, 나아가 유죄로 인정할 만한「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증거가 아니라면 어딘가 문제점이 있는 기소자세로 생각되어 그 공정성을 의심케 된다.
둘째는 기소 상에 현 출 되어 있는 여러 공동범죄자 중 유독 박씨만을 기소한 것이 공정한 가하는 의문이다.
물론 여러 범죄자 중 누구를 먼저 기소하고 그중 누구를 불기소하느냐 하는 것은 소추하는 측의 재량이라 하겠지만 그 재량권은 법의 공정성(Fairness)이란 한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의는 무엇인가>
우선 이 사건의 기소장을 보면 수뢰 자로 되어 있는「리처드·해너」등은 기소하지 않은 채 수뢰자만을 기소하고 있다. 원래 뇌물죄는 준 자와 받은 자의 양면성(Duality)이 있어 쌍방을 같이 처벌하거나 오히려 수뢰 자를 엄히 다스리는 것이 뇌물죄 본래의 보호법익 상 타당한 것인데 증여자만을 떼어서 기소한 미국의 사법적 조치는 심히 석연치 않은 감을 주고 있다.
더욱이 기소죄명의 하나인 범죄음모 죄(Conspiracy)는 소위「복수요건」이라 하여 필수적으로「2인 이상」의 가담을 요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도 그 모의자 중 유독 박동선씨 1인만을 기소한 것은 어떠한 의도 하에서인지는 몰라도 지극히 상례를 벗어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미국 연방형사소송규칙 제43조는 피고인의 출정 없이는 공판을 진행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 박동선씨는 현재 미국연방재판소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 한국에 머무르고 있어 그 출정여부, 나아가 공판진행여부마저 불명인데도 불구하고 서둘러 기소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점 저런 점을 종합하여 볼 때, 이번 미국 측의 기소는 편협하고 불투명한 저의가 개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풀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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