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발견 50주년] 1. 맞춤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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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생명의 비밀을 풀 코드인 DNA.왓슨과 크릭이 1953년 4월 그 구조를 밝혀 네이처지에 발표한지 오는 25일로 50주년이 된다.

리번 두개가 꼬여 있는 형태의 이중 나선 구조인 DNA는 지난 50년간 생명의 신비를 벗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2001년에는 인간지놈 지도가 완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이 만든 생명 창조의 퍼즐 풀기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는 상태다. 이에 DNA의 신비와 21세기의 과제를 시리즈로 살펴본다.(편집자)

연세대 의대 이현철 교수는 2000년 신기한 쥐를 만들었다. 간이 췌장기능까지 겸하게 한 것들이다. 췌장이 망가져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 당뇨병 쥐의 간에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를 이식한 것이다.

실험에 사용한 쥐들의 간은 해독작용 등 본연의 기능을 하면서도 인슐린까지 생산한다. 췌장 겸용 간인 것이다. 그 쥐들은 당뇨병이 완치됐었다. 현재 이 교수는 적은 양의 유전자로 그 같은 기능을 하는 새로운 실험 쥐를 만들고 있다.

이는 췌장에 인슐린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이식해봐야 췌장 자체가 망가져 인슐린을 만들 수 없을 때 사용할 수 있다. 당뇨환자에게 이런 의술이 적용되면 더 이상 당뇨병이 난치병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이 교수는 7, 8년 뒤면 완전한 유전자치료법의 개발로 당뇨병을 완치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현철 교수의 유전자 치료는 DNA가 열어가는 미래 맞춤 의학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맞춤의학은 개인의 특성에 맞춰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으로, 미래의학의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DNA칩으로 어떤 질병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 발병 전에 미리 알 수 있다.

또 그 질병 유전자가 있다면 언제쯤 발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식습관을 바꾸거나, 유전자를 새 것으로 바꿔 끼워주는 식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집안 내림으로 암이나 당뇨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미리 그 것을 정상 유전자로 바꿔주면 그런 난치병도 피해갈 수 있다. 만약 발병했다면 이현철 교수처럼 다른 장기가 치료물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완치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치료법은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고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런 뒤 부작용이 있으면 그 약물이나 치료법 사용을 중단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인간지놈 지도가 완성됨에 따라 미래 맞춤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개인간의 염기서열의 차이는 0. 1% 밖에 나지 않지만, 질병이나 개인의 특질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인간지놈 지도는 이런 차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염기는 DNA를 구성하는 물질로 네 종류가 있다. DNA를 집으로 비유하면 염기는 벽돌격이다. 이 염기 수십~수백개가 모여 하나의 유전자를 이룬다. 인간 유전자는 3만~3만5천개. 염기는 사람마다 30억쌍을 갖고 있다.

맞춤의학 시대에는 개인간 유전 정보의 차이를 알아내는 게 지름길이다. 백혈병에 잘 안걸리게 하는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유전자 중 염기 하나가 다른 것으로 바뀐 것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백혈병에 잘 걸릴수도, 안걸릴 수도 있다. 질병의 감수성이 달라진 것이다. 그 하나의 염기가 바뀜으로써 개인간 유전 정보의 차이가 생긴 셈이다.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는 "유전자는 대부분 하나 이상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병을 만들거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기 때문에 그 유기적인 연결을 알아내는 것이 DNA의 암호를 푸는 열쇠"라고 말했다.

유전자 하나가 고장나 생기는 병이 있긴 하지만 고혈압이나 암 등의 발병은 수십~수백개의 유전자가 간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간여하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과기부 21세기 프런티어 연구사업 중의 하나인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은 간암이나 위암에 걸린 한국 사람의 세포에서 암 유전자로 의심되는 1천4백여종의 유전자를 찾아 냈다. 그 중 위암의 것은 8백여종, 간암의 것은 6백여종.

이들은 암 세포에서 특이하게 활동하거나, 다른 정상인의 세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이상한 유전자만 골라낸 것이다. 여기서 암 발병 유전자나 억제 유전자를 확실하게 분리해 내 유전자 네트워크를 알면 암도 완치가 가능한 것이다.

이를테면 17번 염색체에 있는 암 유전자가 활동을 시작하면 7번 염색체의 것도 덩달아 활동을 하는 등 암에 간여하는 유전자 수백개가 연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네트워크를 알면 암 유전자간의 연동을 단절시키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맞춤의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유전자 탐색 속도이다. 80년대에는 하나의 유전자 고장으로 생기는 낭포성 섬유증의 유전자를 찾는데 3억달러와 7년이라는 세월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단 7초면 그 위치와 염기 순서까지 찾아낸다. 컴퓨터기술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하루에 겨우 염기 5백개 정도를 분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만개를 해치운다. 몇년 안에 개인의 정밀한 유전자지도가 하루 만에 완성되는 날이 올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인간지놈 지도는 30억개의 퍼즐 조각을 맞춰 놓은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나열된 그 조각의 태반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암호를 푸는 작업이 21세기 세계 생명공학계의 화두다. 그게 맞춤의학 시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박방주 기자

<사진설명>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의 한 연구원이 DNA칩을 컴퓨터에 넣어 검사하고 있다. 점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DNA다. 이를 통해 발병을 예측하고,예방할 수도 있다. 수많은 DNA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게 미래 의학의 관건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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