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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가 사는법] 마에스트로 정명훈

중앙일보

입력

마에스트로 요리에 흠뻑 빠지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온 부모님이 워싱턴 대학 앞에서 한식당을 열었었죠. 따로 사람을 쓸 형편이 못 되어 부모님은 물론 형제들이 모두 식당 일을 해야 했어요. 어머니와 형님이 서빙을 맡고 아버지와 내가 주방을 맡았죠. 언제부턴가 나는 아버지가 주방을 비워도 혼자서 음식을 척척 만들어냈고 요리가 너무 재밌어 틈틈이 피아노를 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어요.”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울 기회는 갖지 못했고, 그것이 늘 안타까워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평생 소원이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꼭 배우고 싶었다. LA 필하모닉에 있을 때 만난 이탈리아 출신 상임지휘자와 함께 이탈리아 식당을 자주 가곤 했던 정명훈은 그때 이탈리아 음식에 완전히 빠졌다.

가족과 함께 먹는 즐거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워낙 내가 연주 생활이 바쁘다 보니 가족과 세끼를 다 먹고 24시간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단 하루 내 생일이 그날이었는데, 함께 요리를 해먹으면서 정말 행복하게 보냈었죠. 이탈리아 바닷가에서 지낼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벽시장에 갔어요.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준비를 한 후 오후 4시쯤부터 밖에서 불을 지펴요. 먼저 회를 먹고 조개, 새우를 재료로 스파게티를 해먹는데, 생선구이를 먹고 마지막으로 꼭 한국식으로 생선찌개를 해먹었죠.”
2002년 초 가족은 프랑스 프로방스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면서 가장 좋아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맑은 공기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시골 생활을 오래전부터 꿈꾸었는데, 마침 정원과 텃밭을 가꿀 수 있을 만큼 넓은 곳이 눈에 띄었다. 이곳으로 옮겨오자마자 부부는 집 앞에 텃밭을 일구었다.

연주가 없어 집에 있을 때 정명훈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텃밭에 나가 야채를 뜯고, 닭장에 들러 갓 낳은 달걀을 거둬 온다. 아내는 절대 부엌에 들어오는 일이 없다. 정명훈이 아내에게 좀처럼 요리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내의 요리 솜씨가 더 좋다. 특히 김치는 도저히 아내를 따라갈 수 없어서 아예 아내에게 맡기고 있다.

아들 셋은 정명훈의 식성을 닮아서 파스타를 하루 한끼는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약간 덜 익은 듯 꼬들꼬들하게 삶아 즉석에서 먹는 것도 그렇고 고추기름을 뿌려 매콤하게 먹는 것도 넷이 닮았다. 아이들도 요리하는 걸 좋아해 정명훈이 없을 때 주방을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큰아이 진은 LA에서, 둘째 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셋째 아이 민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각기 출생지가 다르지만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에서 많이 보내서 그런지 모두 이탈리아식을 좋아한다.

마에스트로 요리에 흠뻑 빠지다

음악적인 성공을 이룬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줄 알기 때문에 그는 자식들에게 음악 공부를 특별히 시키지는 않았다. 진은 큰아이라는 이유로 어려서 피아노를 가르쳤지만 선과 민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4, 5살 때쯤 가르쳐보았더니 전혀 흥미를 못 느끼고 싫어해 시키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진은 음악을 하지 않고 선과 민이 각각 재즈와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있다. 올해 미국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첫째는 음악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는 중이다.

“우리 부부는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음악 교육을 특별히 시킨 적이 없어요. 그 덕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지요. 함께 여행을 다니고 마음껏 뛰놀고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며 지냈어요. 다만 한 가지 아이들의 생활반경을 넓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했고, 그 생활반경 안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가르쳤어요.

부모로서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에 대해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저 믿고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해 그 길을 가려면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직도 연애하는 정명훈 부부

힘들어도 아이들 키울 때가 좋다는 말이 있듯, 정명훈도 아이들 어렸을 때가 그립다. 그땐 아이들과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다 컸기 때문에 오히려 집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부부는 둘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30년 넘게 알고 24년 된 여느 부부의 덤덤함을 생각하겠지만 둘은 아직도 연애하는 것처럼 산다. 연주 여행으로 늘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 안타까움이 되어서 그런 걸까. 아내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정명훈은 가끔씩 아내의 손을 잡고 시내까지 나가 장을 보러 간다. 집에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 한 잔의 여유가 늘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기획 : 여성중앙 | patzzi 노영선

기사제공 : 팟찌닷컴 (http://www.patz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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