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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영화의 고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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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영화계에는 「스니크· 프리뷰」(sneak preview) 라는 재미있는 제도가 있다. 개봉전의 영화를 다른 영화의 상연극장에서 아무 예고 없이 덤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극장안에는 영화회사의 조사원들이 깔려 관객의 반응을 조사한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를 일반관객이 싫어하면 큰 일이다. 그래서 꾸며낸 것이 이 공개시사 제도다.
51년에 「존·휴스턴」이 감독했던 <용사의 붉은 훈장>은「스니크·프리뷰」에서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자 개봉이 보류됐었다.
제작자가 망설이는 영화는 대개 「스니크· 프리뷰」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는 전혀 개봉극장에서 상연되지 않는 영화들도 많다. 특히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영화들은 이런 부류에 속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앤디·워흘」은 실험적 영화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64년에 만든 <잠>이라는 영화는 어느 한남자의 잠자고 있는 장면만을 6시간이나 찍어나간 것이다.
이런 영화는 이른바 「아트·디어터」나 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 관객들은 대부분 젊은이들. 이들은 영사회가 끝나면 토론회를 갖는게 보통이다.
이리하여 영화관객의 기호가 조금씩 바뀌어져 나간다. 「할리우드」도 이것을 무시하지 못한다.
영화의 질은 관객의 질이 좌우한다. 좋은 관객이 없으면 좋온 영화가 나을 수가 없다. 이래서 「프랑스」에서는 「시네· 클럽」운동이라는게 있다. 이것은 전국적인 영화감상회 조직이다. 본부에선 우수한 영화를 선정하여 각 지부에 돌려 회원들이 감사하고 토론하게 한다.
국산영화의 질이 낮은 것도 그 허물이 반드시 영화업계의 영세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마리엔바드><「셸부르의 우산><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연인들><검은 「올페」> 등 세계를 감동시킨 명화들이 모두 가난한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질에 있는 것이다. 최근에 서울시내 두개의 극장에서 상연중이던 어떤 국산영화가 갑자기 중단되어 말썽이 되고 있다.
여기서 보면, 국산영화의 질이란 기이하게도 극장주의 타산과도 크게 관계되는 것 같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상연 할 극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자연 극장주의 눈치를 살펴야한다.
한번 상연에 관객이 몇 백명도 안된다면 수지타산이 급한 극장주로선 집어치우고도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새작품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다. 결국 양식의 소유자가 못되는 극장주들에게 마음대로 한 영화의 사활의 고삐를 쥐게하고 있다면 그대문에도 국산영화의 질이 조금도 나아질 턱이 없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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