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어류·양서류 틈새 메운 틱타일락 … 사람 몸과 골격 유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익티오스테가의 골격 복원도. 둥근 머리 양쪽에 눈이 붙어 있는 어류와는 달리 익티오스테가는 납작한 머리 위에 두 눈이 달려 있다. 머리는 어깨가 떨어져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며 지느러미는 다리처럼 변했다.

지금부터 4억2000만 년 전 실루리아기 지구의 바다엔 거대한 전갈처럼 생긴 절지동물이 살았다. 이들은 큰 수평의 꼬리로 마치 접영 수영선수처럼 몸을 굽이치면서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크기가 3m에 달했다. 바다전갈이라고 불리는 이 절지동물은 당시까지 지구에서 진화한 가장 큰 동물이었으며 물고기를 입에 쓸어 담았다. 바다에 살았던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바다전갈은 어떻게 그토록 커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대기의 산소 농도 때문이었다. 오늘날은 대기 중 산소 농도가 21%인데 반해 당시엔 24%나 됐다. 높은 대기 농도는 바다의 높은 용존 산소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고(高)산소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대 동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육지 생물계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육지는 푸르고 늪·호수의 물가뿐만 아니라 높은 산에서도 키 작은 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식물들은 여전히 작았지만 다양해졌다. 그 식물들 사이로 몇 가지 곤충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날개를 단 곤충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기어 다녔다. 아직 척추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식물도 동물도 모두 작았다. 하지만 대기의 산소 농도가 이미 육상동물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렇다면 최초의 육상 동물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곤충이었을까.

곤충이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졌을 리가 없었으므로 곤충의 조상은 마땅히 바다의 절지동물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육지 곤충에겐 바다 절지동물들의 호흡기관인 아가미가 없었다. 이를 놓고 보면 최초의 육상동물은 곤충이 아니라 바다 절지동물이란 가정이 타당해 보인다. 고생물학자들은 그 주인공이 전갈 계통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바다전갈이 물에서 기어 나와 해변으로 씻겨 올라온 동물의 시체를 먹으며 지상을 어슬렁거렸다. 아가미의 넓은 표면적이 여전히 젖어 있어 육지에서도 그럭저럭 호흡이 가능했다.

이때부터 9000만 년이 지난 3억3000만 년 전에야 날개가 달린 곤충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때도 곤충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구성원이었다. 이들이 다양하게 분화하는 데는 다시 2000만 년이 필요했다.

그런데 육지에 곤충이 정착한 뒤에 저(低)산소의 시기가 3000만 년이나 지속됐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육상 곤충은 멸종했다. 하지만 생존에 성공한 극히 소수가 다시 산소 수준이 올라갔을 때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진화했다. 이로써 육지는 안정적인 생태 환경이 되었다. 생명의 새로운 터전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곤충보다도 먼저 육상에 진출한 동물이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척추동물이다.

곤충이 날아 다니기 전 나타난 양서류
3억8500만 년 전 지구 암석에선 평범한 물고기 화석들이 나온다. 이 화석에선 지느러미·원뿔형 머리·비늘이 보이지만 목은 없다. 3억6500만 년 된 그린란드 암석에선 어류로는 보이지 않는 척추동물 아칸토스테가 화석이 나온다. 이 화석엔 목·귀·네 다리가 있다. 양서류 화석이다. 곤충이 하늘을 날아다니기 한참 전에 양서류가 뭍에 살았던 것이다.

생태계에 새로운 틈새가 생기면 생명은 진출한다. 진화는 그렇게 일어난다. 육상이란 새로운 터전이 생기자 물에 살던 척추동물들은 뭍을 탐(貪)하게 되었다. 바다에 살던 척추동물이 육지로 올라오는 과정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육지로 올라오기 전에 먼저 민물로 옮겨갔을 것이다. 절지동물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생활터전을 육지로 완전히 옮기기 전엔 우선 물과 육지 양쪽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서류에서 그 조상을 찾을 수 있다. 양서류란 물과 뭍 양쪽에서 사는 척추동물을 가리킨다.

틱타일락의 상상도. 그림만 봐도 틱타일락은 어류와 원시적인 육상동물의 중간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골격 구조의 모든 특성은 틱타일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류·양서류 사이 틈새 화석 5종 발견
하지만 이것은 가설일 뿐이다. 지구의 원시 생물체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와 육상생물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선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류에서 육상동물로 옮겨가는 중간 화석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 시카고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닐 슈빈은 약 3억7500만 년 전의 데본기 암석에서 중간 화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북극의 엘스미어 섬에서 여기에 딱 맞는 노두(지표에 드러난 암석이나 광맥)를 찾았다. 그의 연구팀은 북극 지방에서 악전고투 끝에 엽상형(葉狀形)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화석을 찾아냈다. 이 이상한 물고기는 크기가 큰 것은 2m74㎝에 달했다. 닐 슈빈은 이 물고기에 ‘틱타일락’이란 이름을 붙였다. 에스키모 말로 ‘얕은 물에 사는 물고기’란 뜻이다. 틱타일락은 물고기처럼 아가미와 비늘을 갖고 있었다. 목과 원시 형태의 팔이 달려 있었다. 이런 형태의 생물을 ‘발이 있는 고기’란 뜻으로 피셔포드(fishapod)라고 부른다. 틱타일락을 두고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화석은 우리 조상들이 물을 막 떠날 무렵의 모습을 담고 있다”며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증을 찾은 것”이라고 평했다.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단계가 발견되면서 어류에서 양서류로 진화했다는 가설은 이론이 됐다. 하지만 아직 양서류로 옮겨가는 과정이 모두 해명된 것은 아니다.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첫째는 다리다. 어류 가운데 다리와 비슷한 엽상형 지느러미를 지닌 것이 최초의 양서류 조상 후보에 올랐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리피디스티안과 1938년 살아 있는 동물로 발견된 실러캐스(‘속이 빈 등뼈’란 뜻)가 그 주인공이다. 어쨌든 이들은 물에 살던 어류다.

어류에서 양서류로 옮겨가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화석은 북극의 엘스미어 섬 외에 그린란드에서도 발견됐다. 3억7500만 년 전 틱타일락이 등장한 데 이어서 아칸토스테가(‘삐죽삐죽한 지붕’이라는 뜻)와 익티오스테가가 그 뒤를 이었다.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넘어가는 중간화석이 5종(種)이나 발견됐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들은 여전히 중간화석과 잃어버린 고리 타령을 한다.

익티오스테가가 등장한 시기는 데본기 말기로 대기의 산소 농도가 낮았다. 즉 멸종이 일어났던 시절이다. 멸종이 일어나던 시절에 과연 육지로 진출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진화는 그렇게 일어난다. 생존 조건이 나쁠 때 생물 종(種)의 수는 줄어들지만 이때 새로운 몸의 설계가 이뤄진다. 산소가 낮은 시기는 진화의 적기(適期)였다.

산소 농도 낮아 다시 물로 되돌아가기도
익티오스테가는 연구가 잘돼 있다. 이 생물은 잘 발달된 발을 갖고 있지만 물고기처럼 꼬리도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익티오스테가는 발 달린 물고기일까, 아니면 물고기를 닮은 양서류일까. 익티오스테가의 발과 발목을 연구한 해부학자들은 이들이 물속에 잠겨 부력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몸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육상에선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익티오스테가는 양서류라기보다는 발 달린 물고기였다. 설사 익티오스테가가 육상으로 진출했고 아가미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많은 물고기들처럼 공기를 꿀떡꿀떡 마시거나 피부를 통해 산소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호흡했을 것이다.

최고의 팔다리를 갖고 있어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진정한 양서류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허파가 필요했다. 허파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양서류의 조상일 가능성이 익티오스테가보다 더 큰 동물은 페르데페스다. 페르데페스 역시 물에 살던 동물이다. 페르데페스처럼 물에 살던 동물에게 허파가 생기기 전에 필요한 준비과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부력이 있는 물을 벗어나 공기 중에서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손목·발목·등뼈·어깨띠·골반이 변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최초의 육생 양서류로 인정받을 수 있다.

허파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 등뼈와 흉곽이 변해야 했다. 원시적인 허파를 완성하려면 복잡하고 표면적인 넓은 주머니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주머니 내부 표면 전체에 혈관이 분포돼 있어야 한다. 동시에 순환계에도 변화가 일어나서 이곳으로 피를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진화 과정을 통해 허파가 완성돼 가는 도중의 중간 호흡계는 물속의 아가미나 공기 중의 허파보다 산소를 전달하는 효율이 낮았을 것이다. 따라서 허파가 완성돼 가던 시기엔 필요한 산소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산소가 공기 중에 존재했어야 한다.

3억7000만 년 전부터 3억6800만 년까지 200만 년 동안 대기의 산소 수준은 12~14%에 불과했다. 이 시기엔 육상으로 진출했다가 낮은 산소 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물로 돌아가는 역(逆)진화 현상도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익티오스테가도 등장했다가 금세 사라졌다. 다시 대기의 산소 농도가 높아질 때까지 이들의 지구 정복은 미뤄졌다.

대기의 산소 농도가 다시 높아진 것은 3억1800년 전인 석탄기 후기다. 석탄기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지금 발견되는 석탄이 생성된 시기가 이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대기의 산소 농도는 극적으로 상승했다. 석탄기 마지막 구간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자그마치 35%에 달했다. 지구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시기다.

틱타일락은 어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틱타일락은 우리 몸에도 남아 있다. 틱타일락 이전의 모든 물고기들은 두개골과 어깨가 일련의 뼈로 연결돼 있어서 몸통을 돌리면 목도 함께 돌아갔다. 그러나 틱타일락의 머리는 어깨와 떨어져 있어 자유롭게 움직인다. 틱타일락이 작은 뼈 몇 개를 잃어버린 덕분이다. 이는 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 그리고 사람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인체 골격의 모든 부분의 속성이 틱타일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두고서 닐 슈빈은 틱타일락을 ‘내 안의 물고기’라고 표현했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