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비아 무력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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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이로 21일 AP합동】「이집트」와 「리비아」는 21일 양국 국경지대에서 공군기와 「탱크」를 동원한 대규모공중전 및 지상전을 벌여 「리비아」공군기 2대와 「탱크」40대·군「트럭」30대가 파괴됨으로써 지난 3년간 계속되어온 「이스라엘」「아랍」분쟁을 둘러싼 양국의 불화 및 대립관계는 드디어 폭발 점에 이르렀다.
「이집트」군 당국은 「카이로」방송을 통해 지난 며칠동안 발생해온 국경충돌이 절정을 이룬 이날 전투는 「리비아」측이 도발한 것으로 「이집트」군은 「리비아」침공에 대한 보복 및 서부국경 수호를 위해 반격했다고 주장하면서 『전투가 발생했으나 「이집트」는 선전포고를 안 했다』고 발표했다.
「카이로」방송은 이 전투에 「리비아」군은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리비아」 파괴공작대원 30명과 제9기갑사단소속장병 12명이 생포되었으나 「이집트」는 몇명의 부상자만 냈을 뿐 사망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리비아」정부성명은 「이집트」가 직접공격을 해왔으며 「리비아」는 영토보존을 위해 대응했다고 밝히면서 「이집트」는 『이 침공으로 야기되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설>아랍 강온파의 주도권다툼|「가다피」의 애내 불만선동도 요인
「이집트」와 「리비아」국경에서의 유혈사건은 73년10월 제4차 중동전이래 중동문제 해결방안을 싸고 양국이 대결해온 강경·온건노선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70년9월 「나세르」를 계승한 「이집트」의 「사다트」는 친소노선에서 탈소정책을 추구했고, 반소주의자였던 「가다피」「리비아」혁명평의회의장은 친소노선으로 선회하는 묘한 국제관계 속에서 73년9월 「아랍」공연방으로 통합을 결정했지만 양국관계는 항상 마찰해왔다.
수출고 세계4위라는 막대한 석유자원을 갖고 있는 「가다피」는 「사다트」의 중간문제해결방안에 반발, 「이집트」의 대「이스라엘」유화정책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으며 소련과 1백20억「달러」규모의 비밀무기협정(75년4월)을 체결하는 대가로 소련에 해군기지를 제공하고있다. 이 때문에 「리비아」가 소련과 합작하여 「앙골라」「이디오피아」「자이레」를 연결하여 「이집트」를 포위, 봉쇄함으로써 「아랍」세계의 맹주로 부상하려하고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에 대항해서 「사다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체결을 시도하고있으며 친서방·친중공정책으로 「가다피」의 자원민족주의에 맞서왔다. 「사다트」는 「가다피」가 소련의 사주를 받아 「이집트」내 공산주의자를 책동함으로써 지난 1월의 물가폭동의 직접원인이 됐으며 자신에 대한 암살을 꾀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맞선 「가다피」는 지난 4월 자국 내에 취업중인 「이집트」노동자 및 기술자 29만명을 추방함으로써 양국관계는 단교직전 상태까지 악화됐다. 양국간의 대립양상은 중동의 「아랍」세계에 대한 「헤게모니」쟁탈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동 및 「아프리카」를 둘러싼 미소의 각축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집트」는 정규군 34만명·준군사요원 12만명·예비군 50만명이 4천대의 「탱크」와 4백50대의 「미그」전투기로 무장, 숫자상 전력에서 「리비아」를 압도하고 있다.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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