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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갈등, '투자공동체'에 답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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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경제학
KOTRA 외국인투자 옴부즈맨

한·중·일이 핵심 국가로 자리잡고 있는 동북아는 역사와 영토 문제로 점점 갈등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역내 해양패권을 둘러싸고 군사적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그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한·중·일 삼국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한 상호 무역 신장세를 보여 왔다. 이제 한·중·일 삼국은 상품의 이동을 넘어 고급인력, 신기술, 신경영기법이 수반되는 외국인직접투자(FDI)의 활성화로 동북아 ‘투자공동체’ 결성에 나설 수 없을까?

 한·중·일, 북한, 러시아 극동연해주는 바다와 땅, 그리고 강산으로 연결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경제권이다. 유엔이 개발을 추진했던 광대역 두만강 유역을 미국 버클리대학의 스칼라피노 교수는 일찍이 ‘자연경제권’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국경선과 군사적 대치로 갈라져 있지만 광맥과 산하로 연계된 두만강 광역을 다시 물류·금류·인류로 연결하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경제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한 것이다. 범위를 넓혀 한·중·일 삼국도 천부적인 동북아의 인문지리환경을 자연의 순리에 따라 더욱 견고한 자연경제권으로 만들면 삼국이 절실한 지속가능한 성장체제와 시민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군사적·정치적 갈등마저 녹여내는 안전판까지 만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중·일 3국은 공통의 한자문화와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2000년 이상 상호통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사마천은 기원전 100년께 그의 사기 중 ‘화식열전(貨殖列傳)’에 고대 중국에서 정직과 신용에 기초한 유유상통(有有相通)으로 부를 축적한 거상들의 일화를 담고 있다. 일본에서도 유·불·선(儒·佛·仙)을 용해한 이시다 바이칸(石田梅岩)은 근로를 수양이라고 계몽하고 고객 최우선의 오사카 상인정신을 뿌리내리게 했다.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대사는 청해진에 거대한 해상무역기지를 건설하고 당나라와 일본과 통상을 확대해 청부를 창출했다. 그 뒤 조선의 통신사들은 일본과의 문물 교류를 이행하면서 에도(江戶) 입성에 앞서 머무른 시즈오카 청견사의 현판과 벽면에 선린우호의 목판묵필을 남겨 한·일 간 깊었던 통상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상호교역의 측면에서 한·중·일 삼국 간 교역량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례하고 수송거리에 역비례한다는 중력이론에 맞게 발전해 이제는 불가결한 주요 교역 파트너가 되었다. 2013년의 경우 한·중 교역은 2290억 달러, 한·일 간 947억 달러, 중·일 간 3078억 달러를 기록한 절대금액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과 서비스에서 초국경 공급사슬망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삼국 간 FDI 패턴은 일방통행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간 FDI는 50억 달러이나 중국에서 한국으로는 2억 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FDI는 29억 달러이나 한국에서 일본으로는 7억 달러에 그쳤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국 FDI는 70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2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교역은 상품의 선적을 중지하면 바로 중단이 된다. 그러나 사업장과 설비를 투자한 외투기업은 수용국가에 잔류 국내기업과 같은 기능을 한다. 초국경 FDI로 생산분화를 이룩하면 비용이 적게 들고 서로 이익을 향유한다. FDI 불균형도 해소되고 확대 균형도 진전될 것이다. 단일 업종에서도 기술의 중층화 때문에 상이한 기술을 지닌 외투기업은 국내기업에 신기술 신제품 융합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 2, 3위와 10위권에 있는 한·중·일 삼국의 15억 역내 인구는 세계 굴지의 유효소비시장이다. 한·중·일 3국은 투자보장협정을 3년 전에 체결한 바 있다. 저가항공기의 초기항공자유화로 역내 저소득 계층의 이웃 나들이가 일어나면 역내 시민 간의 우의가 증진되고 대량의 일자리가 생긴다. 이제 한·중·일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에 이르기까지 유유상투(有有相投)의 ‘투자공동체’ 시대를 구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외국가로부터 FDI 흡입과 함께 역내국가 간 공급사슬망 효과로 일자리와 국민의 복지가 증진되어 군사적 갈등을 넘어서 평화와 번영의 공간을 넓혀 갈 수 있다.

 한국은 한·중, 한·중·일, 태평양 연안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동북아 투자공동체 구현에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는 외연을 넓히고 정부가 구상하는 21세기 실크로드인 유라시아 공동체 건설에 한반도를 시발점이면서 종착점으로 기능케 하는 주춧돌을 놓게 될 것이다.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경제학 KOTRA 외국인투자 옴부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