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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라거맥주 맛보고, 중세유럽 복합문화 숨결 느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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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프라하 구시가. 틴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이다.

체코에는 정화되지 않고 미화되지 않은 유럽이 날것 그대로 살아 펄떡이고 있었다. 천년의 세월이 차곡차곡 쌓인 각종 양식의 건축물이 그랬고, 손에 잡히는 벽돌과 발에 밟히는 돌길 하나하나가 그랬다. 거리 곳곳에 중세 유럽의 숨결이 거리 곳곳에 스며 있었다. 역사와 문화를 지켜낸 체코인의 자부심은 도시뿐만 아니라 맥주 한 컵에도 어려 있었다.

맥주 수도 필젠을 가다

체코는 맥주의 나라다. 유럽 국가 중에서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국민 1인당 연간 150L 가까이 마신다. 물보다 싸고 흔한 게 맥주다. 체코 전역에 맥주 양조장만 250개 있다.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 필젠.

프라하(Prague)로부터 90㎞ 떨어진 ‘맥주의 수도’ 필젠(Pilsen)을 먼저 찾았다. 매년 8월 말 이곳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이 아니어도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생산 공장에 가면 온종일 맥주 파티가 벌어진다. 이곳 공장에 투어를 다녀가는 관광객도 연 25만 명이다. 필젠 인구(16만 명)보다 많다.

체코 서부 지역 보헤미아(Bohemia)는 자유와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다. 보헤미안에게는 신이 내린 세 가지 선물이 있다고 한다. 태양과 물, 그리고 홉(hop)이다. 황금빛 맥주를 빚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췄다는 뜻이다. 맥주는 수백 년 동안 그들의 영혼을 촉촉하게 적셨다. 13세기부터 맥주를 즐겨온 필젠 시민은 맥주 맛이 성에 차지 않으면 맥주 제조 책임자인 ‘브루 마스터(Brew Master)’를 벌했다고 한다.

필젠은 독일의 전설적 브루 마스터였던 요셉 그롤(Josef Groll)을 초빙해 1842년 ‘필스너 맥주’를 탄생시켰다. 이른바 ‘골든 혁명’으로 불리는 순간이다. 필스너 맥주로 인해 오늘날 세계 맥주 소비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라거(lager) 맥주가 시작됐다. 유럽 곳곳에서 유사품이 만들어지자 그들은 브랜드에 ‘우르켈(오리지널)’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필젠 시민은 “필스너 맥주는 오직 필젠에서만 만들어진다. 세계 곳곳에 퍼진 건 필스너 맥주가 아니라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라고 말한다.

필스너 우르켈 공장 투어 모습.

필스너 우르켈 공장에서 과거 맥주 생산 라인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지하 저장고에서 발효되지 않은 채 오크통에 보관된 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유통기간이 짧아 시중에서 만날 수 없는 맛이다. 거칠면서도 신선한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나무에서 갓 따낸 과일을 한입 베어 문 느낌이었다. 카푸치노의 크림처럼 부드럽고 푹신한 거품이 독특한 맛을 지켜주고 있었다.

필스너 우르켈 공장 투어는 1인 190코루나(약 1만원)다. 가이드와 동행해야 입장할 수 있다. 투어 시간은 홈페이지(prazdroj.cz)에 미리 공지한다. 영어 가이드는 매일 하루 세 번 진행된다. 공장 안 온도가 영상 8도 정도여서 한여름에도 겉옷을 챙기는 게 좋다.

먹고 자기 전에 프라하 야경을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낯설지 않은 도시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비롯해 ‘아마데우스’ ‘미션 임파서블’ ‘트리플X’ ‘블레이드2’ 등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이 프라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프라하는 금세 친숙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프라하는 연간 외국인 방문객이 1억 명에 이른다.

온천 휴양지 카를로비바리.

프라하 산책은 보통 바츨라프(Vaclav) 광장에서 시작한다. 바츨라프 기마상을 시작으로 800m 정도 뻗은 이 광장에서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투쟁은 무력으로 침공한 소련군의 탱크에 짓밟혔다. 슬픈 역사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지금 바츨라프 광장은 평화롭다.

1355년 카렐(Karel) 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체코는 유럽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덕분에 프라하는 여러 문명의 양식이 복합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고딕·르네상스·로마네스크·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물이 프라하라는 한 도시에 섞여 있는 이유다.

카를로비바리의 상징인 푸른 돔.

구시가는 그리 넓지 않다. 조금 걷다 보면 명소가 차례로 나타난다. 시내 광장에 들어서면 70m 높이의 첨탑 두 개가 세워진 틴(Tynem) 성당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옆으로 서로 다른 양식의 건축물이 대비를 이룬다. 틴 성당 맞은편으로는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가 있다. 1410년 만들어진 시계탑은 오랜 세월을 도도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블타바강을 지나는 카렐교.

구시가는 블타바(Vltava)강에서 끝난다. 여기에 아주 오래된 돌다리가 놓여 있다.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잇는 카렐교다. 카렐교는 숱하게 유실과 복구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의 형태를 갖췄다. 다리에는 악사와 화가가 넘쳐난다. 다리 좌우에 15개씩 모두 30개 성자상이 조각돼 있는데, 내로라하는 체코의 조각가가 하나씩 참여해 완성한 것이다.

카렐교를 건너면 프라하성과 만날 수 있다. 프라하성은 9세기 말 건설돼 카렐 4세 때인 14세기 지금의 모습을 갖춘, 체코를 대표하는 고성이다. 어둠이 깔리면 더욱 아름답다. 프라하성에서 카렐교, 구시가로 펼쳐지는 야경은 차라리 몽환적이다. “프라하에 갔다면 먹지도 자지도 말고 야경부터 보라”고 했던 친구의 조언이 실감났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꿈을 깨는 데 며칠이 걸렸다.

◆여행정보=프라하까지는 직항을 타고 갈 수 있다. 체코항공이 매주 월·목·금·일요일, 대한항공이 화·수·금·토요일 주 8회 인천∼프라하 노선을 운영한다. 대한항공이 체코항공의 대주주여서 체코항공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기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프라하는 경유지로도 훌륭하다. 체코가 유럽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유럽의 어느 나라든 1시간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공항에 한국어 안내문이 적혀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는 이점도 있다.

글=김식 기자 , 사진=체코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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