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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 쌍동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백의의 간호원들이 네 쌍둥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 작일자 본지에 실렸다. 뜻밖에도 양육자를 찾고있다는 기사다. 강원도 한촌에 사는 우체국 임시집배원인 가장은 그 아기들을 기르기가 힘겹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네 쌍동이의 기록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작년엔 어느 빈가에서 네 쌍둥이가 태어났었지만 산후관리가 소홀해 모두 잃고 말았다.
네 쌍동이로 생후30일을 맞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인큐베이터」를 벗어 나온, 마치 껍질이 엷은 계란처럼 불안해 보이기만 하는 생명들이다.
일본에선 근자 다섯 쌍동이가 태어나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역시 시골에서 있었던 일로, 이들 다섯 쌍동이를 살려야한다는 사회운동까지 번졌다. 결국 그 아기들은 동경의 유명병원으로 옮겨져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되었다. 돌날을 맞아 이들에게 쏟아져 들어온 세인의 선물이 산적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기록으로는 여섯 쌍동이가 모두 생존해 있는 경우도 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사는 「콜린·로젠코비츠」가에서 태어난 이들 3남3녀는 이제 30대의 청년이 되었다. 바로 3년전인 1974년 1월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도 여섯 쌍동이가 태어났다. 모두 이제껏 건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기록을 보면 열 명의 쌍동이도 없지 않다. 1924년 「스페인」에서, 1936년엔 중국에서, 다시 1946년엔 「브라질」에서 각각 열 쌍동이가 태어났었다. 불행히도 모두 생명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필경 의학적인 한계 때문이었을 것 같다.
우리의 네 쌍동이에 대한 애착도 무슨 기이한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의 불우한 환경에 대한 따뜻한 동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연약한 생명체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인 것이다.
지난해 또 다른 네 쌍동이들이 모두 생명을 잃었을 때 우리는 조용한 분노를 느꼈었다. 그것은 사회적 무관심, 의학적인 태만이 빚은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한 모체에서 동시에 네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은 한 개인의 상황으로는 대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아기들은 벌써 생존의 조건부터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의학적인 보육이 가장 급한 일이다. 그 부모는 생활마저 그늘 속에 있다.
이 네 쌍동이의 생명은 이제 우리 사회의 양식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간호원들의 품에 안겨 있는 네 아기들의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또 한편 애처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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