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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체국 민영화 첫단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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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일 '세계 최대의 금융기관'인 일본우정공사(Japan Post)가 공식 출범했다.

일본우정공사는 한국의 우체국을 운영하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비슷한 정부기관인 우정사업청을 민영화하기 위한 작업의 전단계로 공기업화한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3월 29일자)에서 '족쇄 풀린 리바이어던'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우정공사의 출범으로 일본 은행과 생명보험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정공사가 공기업으로 출범하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일본 총무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민간기업처럼 돈벌이에 나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금융부문에서 차지하는 일본우정공사의 비중은 이코노미스트지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永生)동물에 빗대 표현한 대로 엄청나다.

실제로 일본우정공사의 예금 수탁액은 2백35조엔(2조달러)으로 일본 전체 예금액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자산 규모로 세계 최대 은행이라는 일본 미즈호(1백51조3천억엔)보다도 일본 우체국이 훨씬 크다.

우정공사 보험부문의 자산 규모도 1백25조엔으로 일본 1위인 일본생명보험(45조2천억엔)의 3배에 달한다.

우정공사는 예전에 정부기관으로서 누렸던 혜택 대부분도 여전히 틀어쥐고 있다. 거의 모든 세금을 면제받고 있으며, 민간 은행과 달리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으면서 예금은 정부가 완전히 보장해준다. 일본 은행연합회는 우체국이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아 얻는 이익이 최근 12년간 4조5천억엔에 달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일본 은행들은 우정공사가 금융 신상품을 도입하기 위해 장기 주택담보 대출(모기지)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좌불안석이다. 은행들은 현재 모기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국영 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고(住宅金融公庫)가 2005년 문을 닫는다는 발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우정공사는 다른 은행과 달리 인지세를 면제받기 때문에 주택담보 대출에 유리하다.

생보업계도 불만이다. 우체국 보험은 정부가 지급을 보장한다. 민간 생보사처럼 업계의 자체 안전기금에 돈을 낼 필요도 없다. 1980년대 우체국 보험이 경쟁적으로 예정이율을 올려 업계의 경쟁을 촉발하는 바람에 지난 4년간 생보사 6개가 문을 닫았다.

공기업화로 달라지는 것은 금융감독기관인 일본금융청이 우정공사의 예금.보험부문을 감독하게 된다는 것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우정공사의 출범이 민영화의 첫 단계지만 공기업인 우체국이 민간 기업보다 더 강력해졌다며 '살얼음판 위의 민영화'라고 꼬집었다.

뉴욕 타임스(NYT)는 최근 공기업 방식의 일본 우정사업 민영화를 '일본 방식의 규제 완화'라고 평했다. 부분적으로만 경쟁을 도입하고 나머지는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우체국을 민영화한 독일.영국.뉴질랜드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독일의 경우 민영화 이후 비교적 성공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나 뉴질랜드는 민영화 이후 서비스가 오히려 떨어지는 등 실패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영국도 여전히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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