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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모방 → 변형 → 재창조로 성공 가도 … 중화권의 IT황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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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4면

지난달 23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 발표했다. 1위는 미국의 팝스타 비욘세였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한국계로는 뉴질랜드 골프 선수 리디아 고가 유일하다’는 아쉬움 섞인 논평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중국 반응은 달랐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위 의장 등과 같은 쟁쟁한 인물을 제치고 자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Tencent)의 마화텅(馬化騰·43) 창업자가 2위에 오른 것이다. 타임은 그에 대해 인터넷 업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으며 사업뿐 아니라 중국의 문화적 지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했다.

<32> 中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

마화텅이 창업한 텐센트는 이제 중국 1위 인터넷 기업에서 글로벌 투자회사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시너지 효과 창출에 방점을 둔 전략적 투자다. 한국, 미국 등이 주요 투자처다. [블룸버그 뉴스]

사실 우리나라에서 ‘텐센트’, 중국 이름으로 ‘텅쉰(騰訊)’이라는 회사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정보통신(IT) 업계에서의 존재감은 확연하다. 카카오톡을 만든 회사 ㈜카카오의 2대주주라거나, 3월 말 CJ게임즈에 5억 달러를 투자해 3대주주가 됐다거나 하는 것도 한 이유다. 텐센트 이름을 달지 않고는 중국 게임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텐센트가 구글, 아마존에 이은 세계 3위 인터넷 기업으로 우뚝 선 데에는 각종 한국산(産) 서비스에 대한 창조적 모방이 결정적이었다.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마화텅 창업자는 현재 중국 1위, 아시아 8위 부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BI)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130억 달러로 추정된다(1월 기준). 지난달 초에는 미국 경제지 포춘이 발표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 중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텐센트의 시장가치는 약 1500억 달러(3월 기준)다. 2004년 홍콩 증시 상장 이후 10년여 만에 138배 커졌다. 지난해 매출액은 98억 달러로, 전년 대비 41.3% 증가했다. 성장을 이끈 일등 공신은 메신저 서비스 QQ다. PC와 모바일에서 모두 사용 가능한 QQ의 월평균 활동 사용자 수는 약 9억 명이다. 지난달 15일 텐센트는 “QQ의 동시 접속자 수가 2억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브라질 인구에 맞먹는 숫자다. 이 회사의 ‘중국판 카카오톡’이랄 수 있는 위챗(wechat) 가입자는 약 5억 명, ‘중국판 싸이월드’인 ‘Q존(Qzone)’ 가입자는 약 6억 명이다. 각각의 서비스는 일종의 포털 역할을 한다. QQ만 해도 메신저 기능을 넘어 게임, 음악, 전자상거래, 교육, 동영상, 결제, 심지어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광고 매출에 의존하지 않으며 다양한 수익모델을 갖춘 것은 이 회사의 큰 장점이다. 그 덕분에 지난해 4분기에만 6억41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거뒀다.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도 후하다. 프랑스의 글로벌 투자기업 크레디리요네(CLSA)는 위챗의 가치가 최대 6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처럼 거대한 인터넷 왕국을 건설한 마화텅은 광둥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선전대(深圳大) 컴퓨터공학과 재학 시절부터 천재 프로그래머로 이름을 날렸다. 졸업 뒤 무선호출기 업체인 선전룬쉰(深圳潤迅)에 입사했다. 인터넷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회사에 신사업을 제안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는 자비를 들여 집에 컴퓨터 8대와 전화기 4대를 설치한 뒤 중국 초기 인터넷 기업 후이둬왕(慧多网)에 연락해 선전지사장을 자임했다. 일종의 ‘투잡족’이 된 것인데 당연히 회사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1998년 가을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역시 컴퓨터 천재로 통하던 대학 동기 장즈둥(張志東)을 설득해 텐센트를 창업했다. 초기 자금은 일종의 실시간 주가 확인 프로그램인 ‘구바(股覇)카드’를 개발해 번 돈으로 충당했다.

이들이 처음 내놓은 서비스는 당시 미국 IT기업 AOL이 내놓은 메신저 ICQ를 모방한 OICQ였다. 하지만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어서 ICQ의 이런저런 기술적 단점을 보완하고 중국 여건에 맞는 서비스로 변화시켰다. 예를 들면 ICQ는 기존에 사용하던 PC가 아닌 다른 기기에서는 친구 정보를 볼 수 없으며, 오프라인 상태 친구에게는 메시지를 남길 수도 없었다. 텐센트는 고객 정보를 각 PC가 아닌 서버에 저장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서비스가 한참 힘을 받을 즈음 AOL이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저작권 인식이 전무했던 텐센트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서비스 이름을 QQ로 바꾸고 손해 배상도 했다. 설상가상 닷컴 버블이 붕괴됐다. 안 그래도 자금력이 달리던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 투자회사 IDG와 홍콩 PCCW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한국의 싸이월드를 벤치마킹한 유료 아바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전략은 적중해 가입자와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3년에는 게임 시장에 진출했다. 콘텐트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기술력 뛰어난 한국 게임업체들과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다.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같은 한국산 게임들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텐센트는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04년 홍콩 증시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치솟았다.

이후에도 텐센트의 주된 전략은 모방과 변형, 재창조다. 예를 들어 텐센트는 2012년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했다. 이를 기화로 카카오의 노하우를 속속들이 파악한 뒤 자사 서비스인 위챗에 적용했다. 이런 방식 때문에 텐센트는 종종 ‘카피캣(모방꾼)’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마화텅의 생각은 확고하다. 중국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많은 중국의 인터넷 기업이 외국 모델을 모방했다. 대부분 망했다. 하지만 텐센트는 성공했다.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그릴 때, 텐센트는 고양이를 본떠 호랑이를 그렸다.” ‘창조적 모방’이야말로 텐센트의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마화텅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한편 내적으로는 강한 승부욕을 지닌 인물이라고들 주변에선 말한다. 말수가 적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자사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 보고 미래 전략을 짜는 데 바친다. 독서광인 데다 겸손하고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게임업체 등 사업 파트너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다거나 다른 갑부들과 함께 중국의 국회 격인 전인대에 참석해 실속을 차리는 등 ‘자본가’로서의 생리에도 충실하다.

이제 마화텅 앞에 놓인 가장 큰 도전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아무래도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중화권 서비스’에 머문 감이 없지 않다. 그 스스로 지난해 5월 열린 글로벌 모바일 인터넷 콘퍼런스(GMIC)에서 “중국 인터넷 기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 지도 곳곳에 족적을 남기고자 노력할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이런 그의 야망이 한국 인터넷 업계에는 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흥미진진한 동시에 또 조금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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