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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일한 자원「물」서 힌트…「발전기」로 유럽정복 스위스의 BB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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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북부「스위스」의 공업도시「바덴」의 상오 7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한 중년신사를 만났다. 『「스위스」의 부를 취재하고있는 중앙일보특파원들입니다』고 인사를 청하자 『바로 오늘 우리 회사를 방문하시지요.』 그는「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중기제작회사인「브라운·보베리」의 국제담당중역「버린스키」였다. 원자력발전시설에까지 기계라면 못 만드는 것이 없다는 이 회사 중역의 자전거출근은 아무래도 뜻밖이다. 『오후에 만날「스케줄」이 돼있으니 그때 만납시다.』 한마디 남기고 사무실로 사라진다. 시간이 아깝다는 태도였다.

<중역들도 자전거 출근>
하오 4시, 책상과 손님접대용「소파」밖에 없는「버린스키」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여비서 한 명 없이 그는 혼자 일하고 있었다.『휘발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차를 운영하기 힘듭니다. 대부분 자전거가 아니면 열차를 이용하지요.』 안내역「히어」박사의 귀띔이다. 그에 따르면 부사장도 자전거 출근이며「코피」를 마시고 싶으면 복도의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직접 사 마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BBC(「브라운·보베리」「그룹」을 이렇게 부른다) 뿐만 아니라 전「스위스」인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이다.
「버린스키」의 설명은 감동적이었다. 자원이란 호수의 물밖에 없는「스위스」에서 물을 이용한 산업을 구상한 것이 BBC이다. 한 나라의 기간산업이 하나의 민간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BBC는 증명한 것이다. 지난 세기 초, 특히 1812년의「스위스」는 존폐의 위기에 있었다. 「나폴레옹」은 공수표만 떼고 독일과 마찬가지로 식량을 팔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가까운 강대국들에의 경제적 의존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체험했고 살길은 먼 곳의 나라들과의 교역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 그는『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방향은 산업화·공업화로 결정됐다』고 했다.
그러나「스위스」는 자본이 없었다. 흔히들 경제부흥의 4조건은 지하자원, 비옥한 경작지, 식민지, 해양과의 접촉이라던 19세기적 개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본은 우선 피난민으로부터 나왔다. 「부르고뉴」전쟁과 30년 전쟁, 「프랑스」대혁명 때「유럽」의 대 귀족·「부르좌지」들이 유형의 땅을 피난지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들의 자본투자는 보잘것없는 수공업을 공업화하는 기폭제가 됐다. 또 피난민들은「스위스」공업의 생산품들을 먼 그들의 조국에 팔게되었다. 생산과 교역의 주역을 이들이 담당한 것이다.

<피난민 투자가 기폭제>
『이는「스위스」당국이 피난민들에게 국내 상행위를 금지시켰던 효과를 본 것이지요.
1620년대「앤트워프」의 명문「알베」공작의 후예들이 이 땅에 들어와 1758년 화학공업을 현대화시켰고 농토가 없기 때문에 식품가공법을 발전시켜 오늘날「네슬레」상표는 세계를 지배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또 이 때문에 제분기는 세계최고품을 생산하게 되었구요. 지난 세기에「우즈빌」의 철물상「아돌프·뷜러」는 새 제분기를 만들어 오늘날「뷜러」상표의 기계가 세계양곡의 4분의 1을 다루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에피소드」는「앙리·뒤낭」이 국제적십자사를 창설한 경위입니다.』
「뒤낭」은 제분기 상인이었다. 그가「나폴레옹」3세를 면회하고자 한 것은「알제리」에 제분기수출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프랑스」황제를 만나러 가다가「솔페리노」의 무시무시한 전장 속에 끼어 진퇴양난이 되었다. 총탄을 맞고 죽어 가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인간을 돕는 사업을 결심했다는 것. 『이 같은「스위스」공업화 과정에서 2명의 젊은 기능공의 기발한 발상이 오늘의 BBC건설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1827년「런던」태생인「찰즈· 브라운」은 증기기관차 공장에서 일하다가「스위스」의「외리콘」공장으로 옮겼는데 이 공장에서 독일인「발터·보베리」와 만나 단짝이 되었다.
이들은「스위스」가 공업발전을 위한 자원이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23세의「보베리」는「러시아」의 공장건설 계약 때문에 오늘의「고르키」시에 갔다가 하나의「아이디어」를 얻었다. 「러시아」는 땅에서 식량을 생산하는데「스위스」는 물(수)에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착상이었다.
「브라운」에게 자기「아이디어」를 털어 놓고 회사설립에 나섰지만 고작 기능공인 이들에게 자본이 있을 리 없었다. 거부를 찾아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보베리」는 당시「취리히」굴지의 방직회사 사장의 딸을 사귀어 협력을 애걸했다.
「빅트와르」양은 애인을 위해 아버지「바우만」에 매달려 설립자본금을 빌릴 수 있었다. 「바덴」에 본부를 둔다는 두 청년의 결정에「브라운」의 아버지와「보베리」의 장인은 강력히 반대, 난관을 겪었다.

<한국서 주문한 기계도>
이들은 1890년2월23일「줌·슈벨르」식당에서 토론, 결국「미래의 확장을 위해」「바덴」으로 결정하고 이 조그만 식당을 회사사무실로 썼다. 당시「바덴」군수는 이 결정에 감격, 오막살이 집 한 채에 창고를 끼어 4만2천6백40「프랑」에 제공했다.
1891년10월2일 드디어 두 기능공의 이름을 따 BBC가 출범했고 물을 이용하는 수력발전기 제작에 착수했다. 만 1년만에 BBC사무실에 최초로 전등불이 켜졌고 수일 후 전 농가에 전깃불이 밝혀진 이래 BBC는 세계발전시설의 선구를 달리게 되었다.
「히어」박사는「바덴」에서 25km지점의 원자력 및 수력발전시설 공장을 보여주었다. 2천2백여 명의「엔지니어」및 기능공들이 하루 9시간 일하는 BBC「버르」공장이다. 이 공장은 세계최초로「터빈」교류발전기를 제작했다. 『이것은 1분간에 3천6백 번 도는 증기「터빈」이며, 저것은 3천 번 도는 수력「터빈」이고…또 저것은 높이 11m짜리 원자력발전기이며 또 이것은 4백35t짜리 원자로이다….』

<절약정신도 큰 밑천>
28m높이의 난간 위에서 내려다 본 공장내부는 평야처럼 넓었다. 한국의 한 민간기업이 주문했다는「시멘트」기계도 각종 발전기와「터빈」속에 묻혀 있었다. 공장 안에 직접 열차가 들어와 2층으로 가설된 공중「크레인」들이 완성품을 쉴 사이 없이 운반해간다.
마침 세계최대라는「모터·터빈」이 끌어올려져 열차에 운반되고있어『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는가?』고 물었다. 『대충 1년 정도 걸릴 것 같다』『값은?』『정확히는 모르겠다. 수백만「스위스·프랑」에 팔릴 것이다. 현재 최대의「터빈」8개를 동시에 제작중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기능공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BBC에서는 20∼30년 근속쯤은 올챙이에 속하며 35∼40년 이상쯤 돼야 고참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항상 당신의 미래를 우리가 준비합니다』는「캐치·프레이즈」를 걸고「유럽」에 이들의「공장이 없는 곳이 없는」오늘의 BBC는 고위간부부터 절약생활을 하는 이상「스위스」의 귀중한 부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았다.<글 주섭일·사진 이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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