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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가자던 아빠가 … " 아들은 멍하니 하늘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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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사고 일반인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희생자 상당수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데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에게 비해 이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다. 이들은 단원고의 피해가 워낙 커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도 없는 처지다. 3남매를 두고 간 40대 가장,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던 아들 등이 그들이다.

 바다를 유독 좋아했던 서모(17·경기도 광주시 초월읍)군은 이제 바다가 싫어졌다.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었기 때문이다. 서군의 아버지 규석(45)씨는 지난달 15일 세월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간판 제작업자인 그는 제주도로 일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는 세월호 침몰 9일 만인 지난달 24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1일 오후 서군은 집안 거실 한쪽에 누워 있었다. 기자가 집을 찾아가자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서군의 어머니 유성남(42)씨는 “큰아들이 사고 이후 밤에도 잠을 못 잔다. 새벽에도 거실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다.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새벽에 몰래 혼자 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군은 누웠다가 얼마 후 다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아빠가 오셨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씨는 “큰아이가 아직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서군은 경기도 광주시가 제안한 심리치료까지 거절하고 집에만 머물고 있다.

 유씨는 “이번 여름에 온 가족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씨의 고교 1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막내아들은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

 서씨는 당초 세월호 대신 전남 목포에서 배를 탈 생각이었다. 사고 발생 일주일 전에도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배가 지저분하고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간판 제작 주문을 한 제주도 업체가 16일 오전까지 와달라고 하자 세월호에 올랐다.

 유씨는 “남편이 평소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사고 이틀 전 유독 ‘가기 싫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때 왜 붙잡지 않았을까 후회된다”고 말했다. 유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유씨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남편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지난 2월부터 인근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유씨는 “단원고 아이들의 피해가 커서 이해하려 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안전행정부 장관 명의의 조화 한 개 보내준 게 정부가 보여준 관심의 전부”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살던 이광진(42)씨도 세월호 희생자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버지(73)와 어머니(71)를 모시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이씨는 작업장이 있는 제주에 가기 위해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출장이 많아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집에 오지 못했지만 아버지 걱정에 매일 집에 전화하는 효자로 알려졌다. 이씨의 매형 한성식(49)씨는 “지난달 초 아버지 생신 때 못 갔다며 제주도 출장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거 사드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처남이 아버지 치료비를 부담하고 용돈까지 주는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산=임명수·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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