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안전한 세상, 거저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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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가누지 못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익살형(溺殺刑)이라도 신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팽형(烹刑)도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비이성적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것도 분노가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이성적 분노가 문제 해결은 물론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안다. 치열한 반성, 신속한 일상으로의 복귀, 그리고 차분한 실천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지적과 제안이 쇄도하고 있는데 뭔가 덧붙이는 것은 사족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 아직 지적되지 않고 있으면 제시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두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첫째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모범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버큰헤드호나 타이태닉호처럼 훌륭한 선장이 모든 사태를 장악하고 질서 있게 지휘해 줄 것이라는 당위론적 기대에만 매달려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선장과 같은 엉터리 같은 선장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난상황에서 최소한의 행동요령을 평상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고, 책임자가 달아나거나 있더라도 엉터리로 지휘할 경우 이를 무시하고 평소에 배운 원칙대로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휘책임자의 오판에 우리 생명을 맡긴 대가를 이번에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쓰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 수많은 지식(나는 아직도 중학교 때 외운 닭·토끼·돼지 등의 품종 이름이 생각날 때마다 우리 교육에 화가 치민다. 극히 일부에만 필요할 지식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면서 모두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안 가르쳤는지) 대신 다음과 같은 해난사고 때의 행동요령을 가르쳤더라면 이런 참사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는 복원력이 있다. 배가 기울어진 채로 다시 바로 서지 않을 때는 복원력을 상실한 것이다. 배가 많이 기울면 선실의 문이 천장에 붙어 있는 모양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되기 전에 선실을 빠져나와야 한다.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수압 때문에 문을 열 수 없게 되고, 밀려오는 물에 복도를 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갑판으로의 탈출은 무조건적이다.

 구명동의는 갑판에 나온 뒤 입어야 한다. 구명동의를 입고 선내에서 물을 만나 물에 뜨거나 밀리게 되면 대피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구조선이 오기 전에 물에 뛰어드는 것은 최대한 미뤄야 한다. 해난사고의 경우 제일 무서운 것이 체온 상실이기 때문이다. 체온보다 바닷물 온도가 높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일찍 물에 뛰어내렸더라면”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안산 단원고 학생이나 선생님 중에 이런 지식을 배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구명동의를 입고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무시하고 “갑판으로 나가자”고 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필자는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교육에 있다.

 또 한 가지 별로 언급되지 않은 것이 비용 문제다. 지금이야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 하나하나에 부딪히면 결국은 그것이 비용의 문제이고 가격의 문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적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왜 일본에서 선령 18년차의 여객선을 도입해 운항하고 있었는지, 일본에서는 여객선 선령 20년이면 폐선하도록 돼 있다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지, 우리나라 연안여객선의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일 터인데 이 모든 배를 다 갈아 치우기 위한 돈을 해운회사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새 배를 지어 운항할 경우 지금의 요금으로 운영이 가능한지, 수백·수천 명의 생명을 앞으로도 월급 270만원짜리 선장에게 맡길 것인지,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상 안전과 관련된 일을 해 온 사람들을 다 문책하고, 능력 있고 사명감에 충만한 사람들로 채우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을 얼마나 더 지불할 것인지 결단이 함께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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