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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스팔트의 왕국」 고도 경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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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반도는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런 아름다운 강산이다. 반세기 전엔 「고요한 아침」에 비유했지만 언결에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탈바꿈하고 있다. 이 탈바꿈은 진정을 바르게 물려받고 물려주게 되는 것일까. 이 소중한 유산을 전국의 몇 사례들을 통해 재검토하는 기회를 마련해 본다. 국토의 장엄화를 위한 하나의 「캠페인」이기도 하다.
춘색이 싱그럽다. 안압지의 버들가지가 연록색으로 부풀고 월성의 고목에 까치가 둥지를 튼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줄을 잇는 길가에서 발굴하는 작업반도 바쁜 손길이다.
경주는 한국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고도.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숨결이 지상뿐만 아니라 땅속에까지 온통 그대로 살아있는 특수지역이다.
정부는 이 점에 착안, 경주를 국제적 관광도시로 개발키로 하고 72년부터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해 현재 2차 5개년(77∼81년) 계획에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옛 모습을 복원하고 깨끗하게 다듬어서 만방에 자랑스런 관광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낮에는 경주일원의 문화재를 두루 관람하고 밤에 위락 휴식하는 자리로는 교외의 보문지 일대에 새 도시를 마련한다는게 기본구상이다.
이런 계획아래 문화재 관리국은 우선 불국사를 복원했다. 경주박물관을 번듯하게 신축하고 천마총을 발굴해 무덤 속의 공개시설을 만드는 등 고분공원을 꾸몄다. 또 안압지를 준설하고 황룡사 터를 발굴중이며 월성도 파봐서 단장할 계획. 그 밖의 여러 유적마다 철책을 두르고 길을 훤히 뚫어 놓았다. 지난 수년동안에 경주의 외모는 어리둥절할이만큼 일신돼 가고 있다.
과연 경주는 이같이 해서 복원되는 것일까. 온 국민이 아끼고 소중히 기대하는 만큼 아름답고 장엄한 옛 서울로 재생될 것일까. 고도로서의 옷치레도 치레려니와 문제는 그 숨결이다. 무엇을 복원하며 누구를 위해 개발하느냐의 문제다.
정부에서 목표한 당초의 경주 개발안은 13개 사적지구를 정비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형성한다는데 초점을 두었다. 즉 토함산지구·5능지구·무열왕릉지구·월성지구·남산지구·김유신묘지구·미추왕릉지구·황룡사지구·낭산지구·문무왕릉지구·괘능지구·금강산지구·명활산성지구 등이 그것이다. 그 일을 지난 수년간 서두른 성과는 경주 전역을 누벼 사통팔달로 뚫은 도로망이 우선 눈에 띈다. 때로는 유적지도 건너지르며 윙윙 차가 내닫도록 「아스팔트」를 질펀히 깔아놨다. 기존 3개 도로를 포함하여 도로가 26개 1백37km로 연장됐으니 경주는 그야말로 『도로의 왕국』이 된 셈. 그 차들을 위해 온갖 사적지마다 「시멘트」로 포장된 주차장이 생기고 막상 관광의 주 대상물들은 담장과 철책에 갇혀 나날이 위축돼 왔다.
관광객들은 차창너머로 건성 구경하며 웬걸 구석구석 담 쳐놓고 돈 받는데 뿐이냐고 투덜거린다. 경주박물관이나 불국사의 경우엔 수입이 격증됐다고 하지만 기타 지역은 언제나 한산하다. 다른 한편에서 경주시민들은 손님이 당일로 빠져 나가버려 더 망쳤다고 울상이다.
관광객이나 주민의 불평을 차치하고라도 경주개발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할 때에 막다다른 것 같다. 그들의 불평이 정곡을 찌른 것은 못될지라도 일단은 재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 좋게 가꿔 보겠다는 일이 하필 그들에게 공허함과 반감을 안겨주는 것일까, 더 망가뜨리기 전에 소중히 다루자는 제안의 소리가 높다.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하자는 제안은 이제까지 도로 개설과 점재 유적의 겉치레에 치우쳤다는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곧 종래의 경주복원 계획은 이념의 부재랄까. 고도의 재생이란 그게 아닌 까닭이다. 편한 길을 내고 겉치레하기에 앞서 어디를 어떻게 손질해 나갈 것인가 맥을 바로 짚는 일이 긴요했다.
고도를 복원하는데는 그 복원의 시대를 먼저 설정해야했다. 이조와 고려는 물론 아니고 신라 때를 잡는다면 천년 역사중 전성기의 8∼9세기께를 짚을만하다. 이조 때의 관아는 현 시가지의 서부지역에 있었다. 신라 때의 경주도시 계획은 3차례에 걸쳐 시행됐었다. 고신라 때에는 서남산을 중심으로 하여 건천에서 오능에 걸쳐 이른바 서시가 형성됐었다. 그러나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월성일대를 중심으로 동시(동도)가 발전했고 이어 낭산을 성지화하여 도시가 확대돼 갔다. 낭산은 시내에서 불국사역에 이르는 중간지점 도로변의 자그마한 구릉. 그러므로 경주를 복원하려 한다면 황남동 고분군에서 낭산에 이르는 지역이 핵심을 이루기 마련이다.
동도의 유허는 상당히 보존돼 있는 편이며 그 대부분은 논밭이다. 궁궐로서의 월성을 비롯해 안압지·첨성대·황룡사가 뒤뜰로 연결돼 분황사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논둑 밭둑을 자세히 보면 정전식으로 구획된 옛도시 계획의 잔형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성스런 터전인 낭산엔 황복사 터와 사천왕사·능지탑 및 선덕·신문·진평왕릉이 현존한다.
그런 한 덩어리의 핵심지가 지금은 가장 심하게 교통망이 몰려 있어 상처투성이다. 기존 철도와 불국로 이외에도 계림로·월성로·안압로·신원화로에 포항으로 나가는 산업로까지 덮쳤다. 뿐더러 분황사 옆의 옛 절터에는 근년 방직공장의 굴뚝이 솟아올랐고 낭산의 동방동에는 새마을 공장이며 방앗간 등이 옛 지형을 허물어뜨렸다. 신축된 경주박물관 자리도 공사 중에 밝혀진 대로 궁궐 앞의 건물지.
도로는 반드시 이런 중요 유적지의 허를 가로 세로 끊고 뚫어야만 했던가. 공장들은 옛 지형의 파괴뿐 아니라 고도의 미관에도 결코 도움되지 못하는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의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동도의 가상도 한 장이 없다. 논두렁 밭둑에 대한 정밀도조차 그려본 일이 없고 사소한 지명도 채집되지 않았다. 사방불이 조각된 탑돌들이 논 가운데 흩어져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돌무더기의 존재 이유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채 버려 두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경주의 복원계획이 이루어졌는지 아리송한 일.
문제는 무엇을 복원할 것인가 하는 목표와 준비에 있다. 천년 왕도를 한갓 경제적 가치로만 볼 때는 길을 내고 담을 치는 일이 시급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국민의 정신적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태종 무열왕릉 같은 위대한 조상의 턱밑에 주차장을 만들고 참배하는데도 입장료를 내는데가 세계의 어느 나라에 또 있을까. 보잘 것 없는 나무 몇 그루지만 계림은 신라를 싹틔운 터전. 만약 첨성호가 주택가에 끼워져 있다면 옛 조상의 슬기와 정신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그 하나 하나의 유물·유적은 낱개로 독립된게 아니라고 역사적 배경과 자연환경의 뒷받침으로 빛나게 된다.
무열왕릉이나 김유신 묘와 같은 몇 능묘는 못 들어가는 묘역이 돼도 좋다. 월성에서 황룡사에 이르는 지역이나 낭산일대는 차가 못들어 가는 산책관광 구역이 될수록 바람직하다.
우리의 속어에 『고물단청』이란 말이 있듯이 보수했으되 손댄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게 복원작업의 자세다. 그런 내실위주의 공사를 한다면 공무원 사회의 업적사업엔 마땅치 않겠지만, 아득한 단상과 먼 훗날의 후손을 위한다면 오늘 우리가 옷깃을 바로 잡아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누구든 경주의 첫 인상은 큰 덩어리로 울멍울멍한 고분군과 안존한 기와지붕에 착 가라앉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주는 어줍잖은 근대화에 들떠있다. 소란스럽고 폐쇄된 데가 많아 잠시도 앉아 음미할 자리가 없다. 누가 이같이 경주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가. <글 이종석기자><사진 김영현기자> [제자 일중 김충현씨]

<도움말 주신분들>
김원룡(서울대박물관장)
윤경렬(경주·미술가)
신영훈(문화재전문위원)
문명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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