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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이전시비 이렇게 생각한다|본사, 각계인사 백명 대상 설문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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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성산대로 건설과 관련, 이전시비로 서울시와 문화재 행사위원회가 맞서 있는 독립문 문제에 대해 본사는 각계 인사와 일반시민 1백명의 의견을 집약했다.
결과는 전체 응답자 중 옮기는 것에 대한 「찬성」이 8명, 「조건부 찬성」이 5명, 「반대」가 87명으로 압도적이다.
문화재 전문가·학계·예술가·건축가·정치경제인·언론인·주부·학생 등이 다양하게 응답한 이번 조사에서 학계(3명) 문화재전문가 종교·예술(각각 1명)·문인(2명) 등에서 8명의 찬성 의견이 나왔다. 이들이 이전에 찬성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독립문이 도로의 한가운데 위치, 시민이 친근감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다. 이와 함께 독립문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 이상 옆으로 옮겼다고 선조의 「얼」이나 「독립정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장소」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현재의 위치로부터 서북쪽으로 50m정도 이전, 서울시 계획대로 공원화 한다면 시민이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므로 독립문의 의의를 지금보다 훨씬 깊게 느낄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다.
조건부로 찬성한 5명(언론계 1·학계 1·예술 1·학생 2)의 경우도 현재의 위치에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스럽지만 사직「터널」을 통과 후 독립문을 우회, 급「커브」를 하게 되면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독립문을 옮기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힌다든지 옮긴 장소의 조경사업을 소홀히 한다면 독립정신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독립문은 그 정신이 중요하므로 그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이전할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의사를 표명한 대부분의 인사들은 『절대로 이전할 수 없다』는 완강한 의견이다. 특히 문화재·학계 인사들은 일제하에도 철거나 이전을 못한 채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고취시킨 기념물이라고 독립문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문화재위원인 김두종 박사(학술원회원)는 독립문과는 자신의 연령이 82세로 똑같기 때문에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현 장소의 유서 깊음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독립문 위치는 이조의 영은문 자리. 영은문이란 중국의 사신들이 황제의 칙서·조서·상사(황제가 내리는 선물)를 가지고 올 때 조선의 왕이 영접한다는 뜻에서 1539년 명의 사신 설정총이 붙인 이름이다. 따라서 1896년 이문을 헐고 바로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의 종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유주현씨도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명하고 영은문을 부순 후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는 것은 서재필 박사를 중심으로 한 독립협회가 장소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규남 박사(전서울대총장)는 일제하 일인이 개성의 선죽교를 옮기려 했을 때 전체시민이 반대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문화재는 형태 못지 않게 위치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옮길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56명이나 됐다.
한편 건축가들은 성산대로가 설계도상의 계획이기 때문에 이미 있던 건축물 특히 문화재는 「이탈리아」 등 대부분 외국의 경우처럼 피해서 계획됐어야 합당하다는 것이며 설계도를 변경시켜야 된다는 의견은 21명이었다.
연대 이경회 교수(건축학)는 부득이한 경우, 성산대로 한복판에 독립문이 놓이더라도 「비스터」(시각)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응답자 중 36명이 외국에서 수령이 오래된 고목, 다 부서진 돌담 하나라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봤을 때 과연 문화민족임을 느꼈다고 답했다.
박대인 교수(신학·감신·미국인)는 미국의 경우 문화재를 보전하기 위한 수많은 민간단체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행정관서나 문화재에 개인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도 감히 원형을 변경시킬 엄두를 낼 수 없도록 압력단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어학자인 이희승 박사는 결국 『문화재를 애호하는 국민의식의 고양이 문제』라면서 서울보다 몇 배나 문화유적이 많은 「로마」시의 경우 문화재를 피해서 도로를 냈어도 서울보다 훨씬 기능적이고 멋있는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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