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에게 권한 주고 책임지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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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론’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가 인재(人災)이면서 관재(官災)인 것처럼 국가를 개조하려면 주도할 인사들의 진용을 잘 짜야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6·4 지방선거를 전후해 개각을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인사 스타일을 확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관료·검사·법관 출신을 중용해왔다. 일종의 안정형 인사다. 하지만 29일 국무회의에서 “관피아(관료 마피아)를 완전히 추방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관료 출신에게 ‘관피아’를 깨는 일을 맡기는 것보다 인재 등용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이원종 청와대 전 정무수석은 30일 “국가개조의 시작은 인사가 돼야 한다”며 “국가개조는 (개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품행이 방정한 공직자가 훌륭한 공직자가 아니다. 소위 ‘범생이’ 위주로 써선 아무것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책임의식이 있는 사람을 골라서 그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면 된다”며 “대통령이 다 지시하면 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관피아를 가만히 안 두겠다고 했는데 한두 사람의 문제라면 찾아내서 처벌하면 되지만 문제는 이게 오랜 관행이라는 것”이라며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관료의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한 이른바 ‘정부60년’ 회의를 매달 열면서 무진장 노력했는데도 아직도 (관피아가) 남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 교수는 “결국 주요 부처는 정무감각이 있으면서 담력 있고 추진력 있는 인사를 택해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튀지 않을 사람, 청문회에서 문제가 안 될 사람을 자꾸 찾다 보니 관료를 쓸 수밖에 없는데 다시 그랬다간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각료의 전문성을 중시해왔으나 그 못지않게 정무감각, 개혁성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이젠 젊고 개혁적인 인사를 중용했으면 한다” 고 말했고 같은 당 김영우 의원은 “정홍원 총리의 후임으로는 조직 장악력과 소통 능력,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 적임”이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을 탄생시킨 아칸소사단은 ‘내 정권’이란 생각 아래 세상을 바꾼다고 나서 관료를 긴장시키고 결국엔 변화시켰다” 고 충고했다. 소통 능력도 중요한 자질로 꼽혔다. 김종철(법학) 연세대 교수는 “ 야당을 포함해 소통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새정치연합 문희상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엔 내가 인사위원장을 하고, 수석들이 붙어서 총리가 추천한 장관들을 면접하고 시험까지 봤다”며 “이런 절차와 시스템이 없어졌기 때문에 결국 턱도 없는 사고가 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용호·천권필·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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