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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획 쿼터의 소급적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의 어업 전관 수역 내 대한 어획「쿼터」7만8천7백t을 금년 1월1일부터 소급 적용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통보는 너무도 원칙을 무시한 일방적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우선 이러한「쿼터」의 소급 적용은 법률 효력의 불소급이란 문명사회에서 확립된 법의 일반 원칙에 어긋난다.
적용 대상자에게 유리한 경우는 몰라도 불리한 경우 새로 제정된 법률의 효력을 소급 적용하지 않는 것은「유엔」인권 선언의 명문 규정일뿐더러 바로 그러한 원칙의 준수 여부가 문명 사회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표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금년 3월1일에 발효된 미국의 수산자원 보호법은 당연히 발효된 날 이후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비록 그 전에 전관수역 내 입어국들과 어업협정을 체결하고「쿼터」를 배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설혹 어획「쿼터」의 소급 적용이 대상 국가들에 유리하거나 적어도 불리하지 않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어획「쿼터」를 두 달 소급 적용하면 1, 2월에 잡은 어획량까지「쿼터」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쿼터」를 줄인 것과 똑같은 불이익을 초래한다.
미국 정부의「쿼터」소급적용 조치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적게「쿼터」가 책정된 우리에겐 일신의 타격이다.
이렇게 대상국들에게 불리한 것이 틀림없는「쿼터」의 소급적용은 문명국이자 세계의 지도국인 미국의「이미지」를 손상하는 유감스런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도덕외교·도덕정치를 표방하는「카터」행정부가 하찮은 이에 구애되어 이러한 문명사회의「틀」을 깨뜨리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인 만큼 미국의 행동은 좋으나 나쁘나 세계 많은 나라로부터 추종되기 마련이다.
그 좋은 예로 미국이 1945년9월28일에 발표한 대륙붕과 보존 수역에 관한 속칭「트루먼」선언은 대륙붕제도의 성립과 연안국이 공해에서 어업 자유를 제한하는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그중『공해의 특정 구성에 있어서의 연안어업에 관한 선언』은 미국 연안에 접속한 공해와, 다수 국가가 어업에 종사하는 공해에서 단독 또는 공동으로 보존 수역을 설정해 공해어업을 규제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이는 당시의 국제법상 통념을 깨는 조치였다.
이러한 미국의 선도에 따라「칠레」「에콰도르」「페루」「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등 중남미 여러 나라가 2백 해리 영해 내지는 독점 수역을 선포하고, 소련도 56년 북서태평양에「불가닌·라인」을 설정했다. 우리가 52년1월18일에 선포한 평화선도 따지고 보면「트루먼」선언의 법리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은 우리의 평화선이나 중남미 각국의 조치에 대해 단순한 어족자원 보존조치가 아니라 독점 영역을 선언한 것이라 해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세상에 없던 것도 자기네가 창도하면 선구자적 행동이고, 남이 기존의 법리를 발전적으로 적용하면 불법이란 식의 독존적 태도였다 하겠다.
구태여 지난 이야기를 들추게 되는 것은 강대국들의 행동이 국제적인 영향을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 국가 이기주의에 흐르는 것이 못마땅해서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지, 조만간「유엔」해양법 회의에서 2백 해리 경제 영역이 채택될 터인데 그 새를 못 참고 미·소 같은 강대국들이 어업 전관수역을 선포할 것이 무엇인가. 더 나아가 그렇게 야박하게 어획「쿼터」를 책정하고 그나마 소급적용까지 해야 옳은가.
강하고 부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사정을 아랑곳 하기는 커녕 앞장서서 자원 득점에 혈안이 되어선 국제사회에서 사회 정의나 도의는 발 불일 곳이 없게된다. 강대국들의 보다 높은 사회의식과 책임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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