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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농부제 시작부터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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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광주시 근교에서 꽃을 재배하는 김병삼(42)씨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키로 했다가 얼마 전에 포기했다.

월 60만원의 임금만 지급하면 된다는 농협 직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져 배정 신청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숙식을 별도로 제공해야 하고, 각종 보험료까지 물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金씨는 "돈도 돈이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농촌의 인력난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키로 한 '외국인 농업연수제도'가 고객인 농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농림부는 올 한 해 동안 우즈베키스탄.우크라이나.몽골 등 5개국에서 5천명을 받아들여 농가에 배정할 계획이지만 희망 농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농가 외면=신청서 접수 마감일인 3월 31일 현재 전남 지역에선 양돈 농가 등 9곳에서 30명을 신청한 게 전부다. 농협 전남본부 측은 일단 접수 마감일을 4월 10일로 늦추고 추가 접수를 받기로 했다.

경남지역은 양돈 농가 4곳 등 모두 5농가가 18명을 신청했다. 경남 양돈협회 이용모 회장은 "외국인 농부를 쓰려면 월 1백만원 이상 드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내국인을 쓰겠다는 농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충북지역에선 7농가에서 축산 18명, 시설작물 9명 등 27명이 신청했다. 다른 대부분의 시.도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외국인 농부를 고용할 경우 최저임금 52만원에 잔업.특근 수당 8만원, 산재.건강.국민연금 보험 및 퇴직금.연월차 보상 15만원, 숙식비 30만원을 합하면 최소 1백5만원 이상은 들어갈 것이란 게 양돈협회 측의 설명이다.

여기에다 외국인 농업연수생은 농가 사정과는 관계없이 3년 동안 취업을 보장해줘야 한다. 또 언어 소통이 힘들어 작업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시설원예업체인 '송광'의 정혜진 이사는 "10명을 고용하겠다고 신청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체로 게으르다는 얘기가 들려 걱정된다"고 말했다.

업종 다양화하고 기준도 낮춰야=이 제도가 실효를 거두려면 시설원예와 축산(양계.양돈.소사육) 분야에만 한정돼 있는 대상 업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수원 농가나 쌀 전업농에게까지 대상을 확대하면 된다는 것이다. 시설원예의 경우 경지면적이 4천㎡ 이상, 양돈 농가는 1천㎡, 한우사육 농가는 3천㎡ 이상의 초대형 농가에만 자격을 부여한 것도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중소 규모 축산농장이 대규모 농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 외국인 노동자에 관심이 많지만 이들에게 이 제도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실제 충북농협에는 하루 5~10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으나 대부분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있다.

엄격한 숙박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도 농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농협 경남본부 지도홍보팀 김육수 과장은 "기업체의 외국인 산업연수생 도입 규정을 농가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지금의 농업연수생 제도는 대폭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호.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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