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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활모럴」의 모색을 위한 특집|아파트촌 새 풍속기(12)-이상 특기교육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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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강변 B「맨션」에 살고있는 L씨(37)는 요즈음 집으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은근히 신이 난다. 집안을 장식한 온갖 것들이 모두 부인과 5살·7살짜리 두 딸이 마련한 것으로 자랑거리로 삼고있다.
탁자 위의 꽃꽂이와 벽에 걸린 묵화며 「스킬」자수품과 선반 위의 도자기는 부인의 솜씨. 또 「피아노」위의 온갖 상장·「페넌트」와「트로피」등은 두 딸이 받아온 것.

<3살짜리 어린이센터
반포고 한강이고 요즘 「아파트」촌은 그야말로 「교육의 천국」이다. 2∼3살짜리를 맡아 가르치는 어린이「센터」가 있는가 하면 환갑이 지난 노파가 다니는 할머니 교실도 있다.
물론 국민학교에 입학하기전의 아이들과 주부들을 위한 각종 학원은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다.
서울 이촌동 공무원「아파트」 맞은편의 어느 4층 건물은 온통 배움의 전당. 1층의 매듭강습소부터 미술학원·태권도장·웅변학원·「피아노」교실·꽃꽂이강습소·서예학원 등의 10여가지 강습소가 골고루 세들어 있다.
실제로 그럴듯한 「아파트」에 사는 집 치고 아이나 어른이 「아무 것도 안 배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이가 배우는 것도 가지가지. 미술 「피아노」 「바이얼린」등 악기류, 무용 웅변 등은 주로 「정서함양과 소질계발」을 위한 것들이다. 또 태권도 「쿵후」 수영 등은 체력단련 건강을 내세운다. 대부분 수강료는 월1만원 안팎.

<한꺼번에 4가지 수강>
이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미술학원. B, Y「아파트」등에는 4∼5개의 학원과 역시 비슷한 만큼의 무인가 미술학원이 있다. 학원당 수강생은 50∼60명. 3살짜리부터 주부들까지 있지만 거의가 6∼7살난 미취학 꼬마들. 반포「아파트」에서 미술학원을 낸 유모씨(36·여)는 중고교 교사경력 12년의 「베테랑」처음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잡고 시작했으나 수강생 50여명 중 중·고생은 단5명뿐이다.
또 H「맨션」의 미술학원은 미취학 아동반 15명 정원제를 지킨다. 이 때문에 등록 못한 20여명의 꼬마들이 원서를 내놓고 지금 다니는 수강생이 이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학원의 미술교사 L씨가 반포에서 인기를 모으자 한 열성주부가 자기 아들을 가르치려고 웃돈을 얹어 「스카우트」해왔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를 꼬마들을 위한 학원에서는 부작용도 많다. 지난해 가을 R「맨션」 어느 미술학원에서는 한꺼번에 「피아노」·「태권도」·웅변 등 4가지를 배우고있는 6살난 사내아이가 미술시간이 끝나자 『「피아노」 치러가기 싫다』 그 울음을 터뜨려 억지로 끌고 가려는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또 여의도에 사는 회사원 K모씨(33)는 7살짜리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으나 1년만에 중단했다. 시력이 나빠져 안과의사에게 보였더니 『악보를 보는 것이 눈에 나쁘다』는 진단을 내린 때문.

<참다운 애정이 아쉽다>
「로얄·맨션」의 어린이「센터」설립자 김숙경씨는 『부모들이 너무 타산적으로 욕심과 돈만으로 자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말하고 『「아파트」 어린이들은 참다운 애정에 굶주려있다』고 한탄했다.
아이들에게 뿐 아니라 「아파트」 주부들은 스스로의 향학열(?)도 대단하다. 꽃꽂이·서예·묵화·요리·외국어회화·매듭·자수·도자기·악기류·칠보·「댄스」·「테니스」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 한때는 「뚱뚱한 주부」들을 상대로 남산에 있는 어느 「헬스·클럽」에서 여의도와 반포「아파트」에 왕복 「버스」를 운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들은 주로 부업으로 보다는 「취미를 살려 여가선용」하는 것이 주목적. 따라서 같은 「아파트」단지 안의 학교동창생들이 「그룹」을 만들어 배우는 경우가 많고 자녀들의 학부모들끼리 배우러 다니는 경우도 흔하다.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꽃꽂이강습. 주1회 하루2시간으로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만든 작품을 집에서 바로 사용한다는 실용성 때문.
영동 AID「아파트」의 갓 결혼한 회사원 K모씨(33)는 처음 부인의 꽃꽂이강습을 반대했다. 부인이 혼자 외출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러나 부인의 꽃꽂이 솜씨가 늘어 집안 장식도 되고 부인이 재미를 붙여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집안에 변화를 주는 것 같아 이제는 꽃꽂이를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유치원 경쟁률 5대1>
H「맨션」에 살고있는 K부인의 가족은 부부와 1남1녀. 남편은 아침 출근 전에 「테니스」를 배운다. 하루30분 「레슨」에 월1만8천원. 부인 K씨는 꽃꽂이·서예를 배우고 월2만원. 7살짜리 맏딸은 유치원과 미술학원·「피아노」교실에 다녀 월3만5천원. 5살짜리 아들은 미술학원에 다니며 웅변·태권도를 배워 월3만2천원. 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없이 30만원정도 수입의 30%정도가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K부인의 말에 따르면 「아파트」입주자들의 대부분이 수입의 25∼30%는 학생 유무에 관계없이 교육비로 쓰고있다는 것.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이 5대1이고 추첨에 떨어진 꼬마들이 남산에 있는 유치원까지 유학을 간다는 한강변 「아파트」촌의 교육열.
매일 매일의 시간표를 짜놓고 무엇인가 배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파트」주부들.
B「아파트」의 공원에서 매주 열리는 꼬마들의 고전무용 공개강습을 둘러서서 바라보는 부모와 구경꾼들의 마음속에서 「아파트」교육열의 허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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