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성규 기자 종군기] 기습 두려워 고속도 두고 사막길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쟁이 시작된 지 오늘로 열이틀째. 가만히 있다가는 날짜 가는 것도 놓치기 일쑤다. 한국보다 여섯 시간 늦은 시차 탓도 있겠지만 한국 기준으로 오늘이 며칠인지 당장 안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런 나에게 미군 병사들은 종종 날짜를 묻는다.

그동안 나는 위험하다는 사막의 보급로를 세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다.

"취재한다고 너무 돌아다녀 위험하다"고 대대장에게 '찍혀(?)' 지난달 27일 나는 캠프 피터빌에서 이라크 남쪽으로 1백30km 떨어진 캠프 세다까지 험비 지프에 실려 후송됐다.

아홉 시간 가까이 걸렸다. 29일 '특청'을 넣어 캠프 세다에서 바그다드 방향으로 1백50km 거리에 있는 캠프 부시 매스터(Bush Master)까지 다시 '전진'하는 데는 18시간이 소요됐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처음 들어오던 지난달 24일 캠프 피터빌까지 가는 데는 총 26시간이 걸렸다. 이라크군의 자살공격이 있었던 나자프 인근의 캠프 피터빌은 너무 위험하다고 해서 사흘 전 급히 폐쇄됐다.

고속도로를 두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 불편한 길을 굳이 주보급로(MSR)로 이용하는 데 대해 "고속도로의 안전이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16전투지원단 51중대의 대니얼 버틀렛 대위는 설명했다. 도로 곳곳에 매복한 이라크 군인들과 민간인 차림의 게릴라들이 기습공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 쪽으로 약 5백km 떨어진 캠프 부시 매스터는 현재 미군의 최전방 보급기지다. 쿠웨이트의 캠프 도하에 보급품이 도착하면 이라크 국경을 넘어 8번 고속도로를 따라 캠프 세다로 일단 옮겨진다.

여기까지는 고속도로라 별 문제가 없다. 캠프 세다에서 캠프 부시 매스터를 잇는 보급로는 엉성한 1차선 포장도로에 양쪽은 모래로 뒤덮여 있다. 캠프 부시 매스터에 도착한 물품은 각 전투부대로 분배된다.

5백km에 이르는 이 긴 보급로를 따라 즉석군용식량(MRE.Meals Ready to Eat).생수 등 먹고 마실 것은 물론이고 선크림.반창고.속옷.양말.면도기.아스피린.치약.휴지.편지지에서 연료와 탄약에 이르기까지 병사들에게 필요한 각종 물자가 운반된다.

미 국방부 병참국은 전쟁이 나기 전 이미 4천8백만개의 즉석군용식량을 공수했다. 길게 연결해 놓으면 미 대륙을 세 차례나 횡단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군장비나 차량의 이동을 위해서는 하루 10만갤런(약 3천1백70드럼)의 연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가 38대의 대형 트럭들 틈에 끼어 캠프 세다에서 캠프 부시 매스터로 올 때 무장 경장갑차(ABS)가 따라붙었다. 이라크군의 공격이 심했던 알사마와 근처에선 브래들리 탱크가 호위했다.

장시간 험비 지프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 온몸이 쑤신다. 어둠이 깔리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운전병인 베네트 상병은 사주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요즘엔 여차하면 숨거나 피할 길을 먼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거의 하루쯤 걸린 길을 나와 함께 운전한 51중대 운전병들은 여섯 시간 휴식 후 다시 캠프 세다로 돌아갔다.

이라크 나자프 인근 캠프 부시 매스터에서 안성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