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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의 인간세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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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6년, 「지구촌」의 두드러진 사회상은 대체로 인간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위협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반면, 이에 대응하는 「인간회복」을 위한 노력도 그에 못지 않게 진지했던 것으로 회고된다.

<도의의 붕괴>
올해 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심각한 도덕적 부정과 타락, 각종 공해와 인구팽창·무거운 세금, 그리고 청소년들의 일탈행위 등이 인간가족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 반면, 전세계적인 규모로 번진 도덕성과 인권·양심 그리고 사람의 회복운동도 그 열기를 더했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워터게이트·스캔들」의 위격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폭로된 「워싱턴」정가의 여비서 「레이」양 사건은 이에 관련된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환멸을 자아내는 사건이었다.
국회의원이 「콜걸」을 여비서로 채용하여 국고로부터 봉급을 지불케 한 데다가 그녀로 하여금 2백여명의 고위 정객들과 「섹스」관계를 갖게 했었다는 놀라운 추문은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정치불신을 더욱 촉발시켜 의회민주주의의 가치와 위신마저 땅에 떨어뜨린 불상사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 상류사회의 부정과 타락상을 드러낸 이같은 정치적 부패와 흑막은 이에 그치지 않고 「록히드·스캔들」이 꼬리를 물어 일본·「네덜란드」·「이탈리아」와 그 밖의 여러 국가에까지 파급하여 온 세계를 들끓게 했고 정치지도자들의 고결한 윤리성과 자유민주주의에 신뢰와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주고만 것이다.
구조적 오직에 대한 국민적 혐오와 압력은 미·일의 정계개편을 불가피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권력의 도덕적 행사에 대한 관심이 올해처럼 제고된 일은 일찌기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부 지각없는 지도층 인사들에 의한 사회적 이화감을 자아내는 분에 넘치는 호화스런 생활과 부도덕한 치부의 실태가 잇따라 탄로남으로씨 국민의 지탄을 받게되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부정·부패·부조천의 추방과 사회 기강 확립이 천혜의 자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근본』이라고 강조한 어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지구환경의 오염>
이렇듯 사회 도의심의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은 인간가치에 대한 확신과 긍지를 마감시키고 있으나 이에 못지 않게 인간의 생존과 인류문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최악의 상태에 이른 공해와 인구폭발 문제라 하겠다. 지구환경을 극도로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공해문제는 이제 지구자원의 고갈과 경제성장의 한계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공해사건은 지난 여름 북「이탈리아」「세베소」읍의 한 화학공장에서 일어났는데 여기서 터져나온 「디옥신·개스」 때문에 주민1천명이 이웃 「밀라노」시로 대피하고 「개스」에 노출된 작물은 그대로 말라죽은 가공할 곁과를 빚었다. 소·돼지·고양이 등은 이 「개스」중독으로 떼죽음을 했고 어린이들은 얼굴이 퉁퉁 붓고 물집 투성이가 됐으나 치료약조차 없는데다 이 지역은 앞으로 3년간은 작물재배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세베소」읍의 비극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환경오염의 심각성은 우리 나라의 경우 더욱 두드러져 올해엔 특히 한강과 태화강에 기형어가 생겨나고 남해연안 일대에 공장폐수로 인한 독수대가 생겨나 어패류가 떼죽음 당한 사태가 신문지장을 메웠었다. 그려나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늘도 물도 대지도 매연과 폐수와 합성세제와 농약으로 더렵혀지고 병들어 우리가 날마다 먹는 쌀·보리·감자 등 곡류와 사과·밀감 등 과실과 당근 등의 채소에서까지 독약이나 다름없는 유해 중금속이 검출되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올해 국민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인체에 해로운 공업용 착색제·표백제·방부제·살균제 등 식품첨가물로 가득 찬 독성식품들이 꼬리를 물고 적발됐던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실업·세금·청소년 범죄>
인류 생존과 문명의 위기에의 경종은 공해 말고도 인구폭발문제에 관한 열띤 토론이 다시 전개되기 시작했던 사실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부존자원이라고는 별로 없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1.64%에 달해 해마다 약 60만명(전세계적으로는 7천8백만)의 식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경제성장의 결과를 상살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더우기 개발도상국의 평균 인구 증가율은 2.5%나되니 빈부의 남북 연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지난 10월 인도의 북부지방에서는 강제 불임 수술에 항의하는 이색 폭동이 일어나 1백여 명이 사망한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이 사건이야말로 오늘날 개도국에서의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다.
한편 올해 세계의 사회상은 유류파동 이래 좀체로 회복되지 못한 세계 경제가 도처에서 「인플레」와 실업률을 높여 사회 불안의 토양을 키우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감속경제하의 국민들은 세금 공세로 더 한 층의 곤욕을 겪어야 했던 한해였다고 회고되는 것이다. 세금중하에서 해방되기 위한 「스웨덴」의 만화감독 「잉그마르·베르히만」과 여류작가 「아스트리드·린드버그」여사의 「세금망명」이 바로 이 사실에의 반증이 아니겠는가.
우리 나라에서도 부가가치세·소득세·지방세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해 전 세계가 치러야 했던 가장 심각한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비행청소년 문제였다고 하겠다.
1960년대 후반·구미와 일본 등지에서 극성을 피웠던 「스튜던트·파워」는 월남전 종식 등으로 「핫·이슈」가 사라지자 급격히 쇠잔해 버리고 평정을 되찾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상의 추구와 방향감각을 상실한 일부 젊은이들은 찰나적인 향락의 추구와 일탈항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 범죄가 76년 한해 무려 5만9천 건에 이르렀을 뿐더러 갈수록 흉악·난폭화해가고 대형화·집단화해 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커다란 사회문제로 되기에 이르렀던 것도 76년의 사회상이 던진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간의 생존과 존엄성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도덕성 재건을 위한 청신호는 세계 곳곳에서 울려지고 있다.
우리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난제, 한국 사회가 겪고있는 힘겨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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