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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따뜻한 겨울」 채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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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말연시는 갖가지 생활의 함정이 도사린 음산한 계절이다. 사회나 가정 모두가 기나긴 겨우살이 준비에 만전을 기해 복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한다.
세밑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초조해지고 더러는 해이되며, 더러는 들뜬 기분이 되어 갖가지 실의나 뜻밖의 비탄을 맞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마다 기원하는 『밝고 따뜻한 겨울』이 늘 보람없이 지나버림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긴 겨울의 추위를 함께 이겨내려는 선린의 뜻이 모자란 탓이다. 모두가 저 한 몸의 안일과 영달에만 바빠 가난한 자, 고통받는 이웃에 마음을 돌리려는 여유가 점점 없어져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해마다 연말이면 문득 생각난 듯이 불우 이웃 돕기도 벌이고 고아원·양로원에도 한줌 성의를 표하고는 있지만, 어찌 그것만으로 차가운 세파의 얼음을 녹일 수 있을까.
선량한 이웃들의 훈훈한 온정도 있어야겠지만 그 보다는 사회나 제도가 더 큰 몫을 맡지 않고서야 언제나 미봉적이며 구두선 일 수밖에 없다. 서민 생활을 괴롭히는 갖가지 요인들은 사회가 무관심한 채 「이웃 돕기」의 차원에만 만족하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추위의 가장 무서운 적은 가난이다. 그러기에 세모를 앞두고 정부가 먼저 역점을 두어야할 일은 노임 체불을 일소하는 일이다. 겨우살이 씀씀이는 태산 같은데도 그 나마의 쥐꼬리만한 노임조차 제때에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마땅히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 연말이면 으례 자금 수요가 밀리어 영세 기업들이 체임하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특히 올해는 금융의 긴축이 연중 지속되어 이런 영세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더욱 나빠졌다.
개중에는 지불 능력이 있는데도 갖은 핑계로 이를 늦추는 질 나쁜 업주도 없지는 않다. 이런 업주들은 노동 감독청의 행정력이나 사법권을 동원해서라도 철저히 응징되어야 한다. 반면, 경영이 일시적으로 나빠진 업체들은 정부가 충분한 결제 자금을 방출함으로써 체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쌀·연탄·김장 등 주요 생활 필수품들의 값을 안정시키는 일은 더욱 긴요하다. 정부는 이런 물자들의 확보, 비축에 자신을 가진 듯 하나 과거의 경험으로는 어줍잖은 수송애로나 부분적인 수급 차질이 의외의 혼란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올해는 다행히 석탄의 비축도 넉넉하고 김장용 소채 생산도 풍작 이어서 큰 파동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다른 물가가 흔들리면 생필품도 달아오를지도 모른다.
전기 요금을 비롯하여 몇몇 공공 요금이 이미 오른 뒤고, 석유 값도 내년부터 다시 오를 전망 이어서 물가 전망이 썩 밝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서민 생활 보호의 핵심은 요컨대, 물가 안정에 있으므로 연말연시의 물가 단속에 각별히 힘써야 하겠다.
연말연시면 악몽처럼 되살아나는 각급 대형 사고나 재해 또는 사건에 대한 대비책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사회적 재난은 원래부터 아주 사소한 실수나 직무 태만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관공서나 치안 담당자들이 더욱 분발하여 인명과 재산 보호에 차질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사회나 가정에서 모두가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소원하고 부실했던 부문을 두루 살피는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따뜻한 겨울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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