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극 정장의 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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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경 561호 경비정장 손진극 경감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있다.
폭풍 속에 휘말려든 어선들을 보호하는 임무수행과정에서 스스로 선체와 함께 순직한 그의 장한 최후는 한 책임 있는 자리를 지키는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뭇사람들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 없다.
부근에서 조업하던 60여 척의 어선을 대피시키고 부하들마저 떠나 보낸 채 배와 운명을 같이한 그의 의연한 죽음은 말 그대로 「살신성인」의 본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은 통상적으로 이해할 때, 생명의 단절이며 절대적인 허무다. 따라서 모든 인간 관계의 끝장인 만큼 인간에게 있어 숨막히도록 진지해지는 순간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수긍될 유일한 가치인 「생명」을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으려는 인간 본질의 가장 중대한 고비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예수」도 그 앞에서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몸부림쳐야 했었고, 석가로 하여금 무상을 터득해 안심 입명 할 수 있기 위해 일생을 바쳐 고행을 하게 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손 정장은 이런 자기의 생명을 던져 많은 다른 생명을 건지고 감연히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는 과거 11년 동안 해경에 봉직하면서 74년에는 바다에 빠진 40여명의 어부를 한꺼번에 구조하기도 했고 또 작년엔 남해를 주름잡던 허봉용파 밀수단의 밀수선 2척을 검거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는 어떠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어진 일에 기꺼이 생명을 바치려는 성실하고 충실한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단칸방에 노모와 처자 등 다섯 식솔을 남겨두고 죽음을 맞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온갖 부조리가 풍조화해 있는 상황 속에서도 가난하되 착하게 또한 옳게 살려는 흔치 않은 또한 사람의 의지가 찬연히 빛나고 사라져 갔음을 뜻하는 것이다.
부유하거나 약삭빨라서 용케 부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좀처럼해서는 음지의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손 정장의 가족들도 거의 틀림없이 양지의 사람들에겐 쉽게 잊혀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드리운 이 같은 슬픔의 그늘을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되겠으며 또 그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해서도 안될 것이다.
살신성인의 뜻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 대들보로 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 공동의 고통으로 삼아야 하겠다.
또 이제 우리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것은 어부의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나라 경비정들이 웬만한 풍랑에도 침몰의 비운을 맞아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다. 속력 위주로만 만들어서 경비정의 배 밑이 삼각이라서 풍랑에 약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침몰이 쉽다면 그런 경비정의 부실도 문제이려니와 그것을 알고도 배를 내보냈다는 것도 책임 있는 행동이라 하긴 어렵다. 뿐더러 풍랑에 잘 견딜 전천후 구조용 선박 한 척마저 확보하지 못한 우리 해경의 처지도 문제다.
손 정장의 죽음을 계기로 그 살신성인의 고귀한 뜻이 반드시 이 사회에 지속적인 가치로서 인식돼야 할 것이며 특히 낙후된 해경의 장비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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