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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법의 개 정 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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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의 중앙은행이 고유한 정책기능을 수행하고 있느냐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중앙은행법을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금융제도 개편 안이 발표되었다.
금융제도 개편 안의 골자는 요약해서 말한다면 한국은행법의 개 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주요 내용은 ⓛ금통운위를 금융정책위로 개편해서 한 은에서 사실상 분리하며 ②한국은행의 임원을 재무부장관이 임명하며 ③은행감독원을 한국은행에서 분리하는 한편 그 임원은 재무부장관이 임명하고 ④한국은행에 대한 업무지시 권을 재무부장관이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편 안이 실현된다면 어떤 결과가 파생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오늘의 한은 법 밑에서도 중앙은행이 고유한 정책기능을 독자적·중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자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은행과 정부의 관계를 양성화한다는 뜻에서 본다면 이번의 금융제도 개편 안은 솔직한 면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원래 현대적인 경제정책개념에 비추어 볼 때 금융정책이란 종합경제정책체계의 일환이며, 때문에 종합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금융정책을 결정하고 또 책임져야 하겠다는 주장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금융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못하는 정부의 공개적 개입은 그것대로 국민의 재산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의 정통이론이며 관행인 것도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경제적으로 선진 된 경제에서 중앙은행법이야 어떠하든 실질적으로 정부가 금융정책에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선의의 협의와 협조로써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R·해롯」의 견해라 할 수 있다. 「해롯」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중립성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풍토의 문제라고 명쾌하게 단정하고 있으며, 이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의견이다.
즉 풍토 적으로 금융에 개입하는 경향성이 짙은 나라에서는 법률적으로 엄격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중립성을 보장해도 이를 지키기 어려운 반면, 영국과 같이 모든 것을 상호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풍토에서는 중앙은행법이 어떻게 만들어져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풍토가 이중 어느 경우에 해당하느냐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거니와, 한은 법 개정안의 기술적 측면만을 검토하더라도 적지 않은 모순이 내포되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첫째,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금융정책위의 위원을 정부가 임명한다면 정부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기관인 한은 임원을 또한 정부가 임명한다면 결국 금융정책의 수립과 그 집행은 전적으로 정부가 담당하는 결과가 되고, 금융의 독립성·중립성은 존립기반조차 없어진다.
둘째, 재무부장관이 금융정책위의 결의를 현행대로「비토」할 수 있다면 정부가 임명한 정책위원과 한은 임원을 정부가 불신하는 결과가 된다.
셋째, 이러한 모든 장치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무부장관의 업무지시 권이 있게 된다면 금융정책위의 존재이유도 명확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넷째, 은행감독원을 중앙은행에서 분리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현재대로 두는 것이 보다 능률적이냐 하는 문제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체계라는 시각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현재 금융기관의 감독은 감독원·재무부·감사원의 삼 원 체제와 각 금융기관의 자체검사기능으로 4중화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일선실무자들은 감독의 중복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며, 때문에 재무부가 은행감독원을 관장할 것이냐 한국은행 안에 존치 시킬 것이냐 하는 협의의 권한관계만으로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다 차원 높은 시각에서 금융기관 감독문제를 다뤄 일원화방안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일원화원칙이 결정되고 난 연후에 그 지휘귀속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끝으로 중앙은행법의 개 정에 따른 금융의 독립성·중립성문제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차원의 문제이며, 결코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좀더 시간을 두고 널리 각계의 의견을 참작하는 성실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겠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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