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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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문호「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죄와 벌』은 한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학비에 쪼들리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라는 그 청년은 어느 날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한다.
범행장소에는 그 노파의 동생이 있었다. 얌전하고 인종적인 그런 여성이었다. 청년은 당황한 나머지 그 여자까지도 살해했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살인강도사건이다. 그러나 범행을 한 그 청년은 뜻밖에 공리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죄악은 그 규모보다 큰 선행으로 보상할 수 있다면 차라리 용납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10의 죄악으로 1백의 선행을 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죄악일까…. 범인은 이런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대지에 엎드려 땅 위에 입을 맞추고 만다.
자신의 범죄에 의해 피로 더럽혀진 대지에 입맞추어 만인에게 사죄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수했다. 그것은, 자신도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내부의 힘에 못이긴 때문이다.
그의 옆에는 또 그러기를 끊임없이 설득한 창녀도 있었다.
이 소설은 죄와 벌의 한 고전적인「모델」을 제시해 준 것이었다. 그 범죄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동기에 있어서는 범인 나름의 깊은 고뇌가 있었다.
비록 가치의 도착일 망정 그는 학비를 어떻게든 조달해 인류애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의 범죄자들은 어떤가.「라스콜리니코프」식의 범죄는 벌써 고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요즘 악명을 높인 살인강도사건의 범인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그 동기를「여자와 돈」에서 찾고 있다. 일말의 회오의 빛도 없이….
그리고 큰소리로 들으란 듯이, 그렇게 외친다.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회 오나 가책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 모든 것을 청산하려고 한다. 「돈과 여자」아니면, 생명 그 자체의 파멸로 끝장을 내려고 한다.
새삼 세상의 무서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전율을 느끼게 된다. 삶의 가치와 목적이 돈 아니면 여자, 그것만에 있다는 충고야말로 우리 사회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행복도 역시 그것들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들인 것 같다. 따라서 희생과 봉사와 사랑 따위는 오늘의「모럴」에서 실로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의 사회는 그런 동기들을 배양하고, 범죄자들은 그것을 범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깊은 충격 속에는 이런 여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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