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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위해 원칙 어기는 건 인간 본능 … 사고 막으려면 법 집행 강화돼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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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18면

최정동 기자

준법감시인(compliance officer)은 금융권에서 일반화된 직책이다. 금융회사가 법규를 제대로 지켜 영업하는지,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거나 여신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진 않은지 등을 감시하는 사내 직원이다. 이범영 한국씨티은행 준법감시본부장은 이 분야에서 10년 경력을 쌓은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하나다. 1983년 한국씨티은행에 입사해 외환·파생상품 거래를 20년 맡은 뒤 준법감시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원칙이라는 게 평상시엔 귀찮은 걸림돌로 여겨지지만 사고가 터지고 나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게 된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나 대형 금융 사고 모두 원인과 해결책은 큰 틀에서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범영 한국씨티그룹 준법감시본부장 인터뷰

-국내나 해외에서 금융 사고가 꼬리를 문다. 금융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금융 사고가 터지는 이유는 하나다. 돈에 대한 본능적 욕망 때문이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이 과도한 성과급을 규제하고 나선 것이나 영국 은행들이 성과 보상 체계를 크게 손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무 과도한 성과급을 주다 보니 눈이 멀어 직원들이 무리한 거래와 판매를 일삼은 거다.”

-성과보상 체계를 바꾸는 게 도움이 될까.
“방향은 맞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투자은행은 성과급 규모가 지나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할 순 없다. 우선 국내 은행은 직원 성과급 폭이 그리 크지 않다. 성과 평가에서 판매 실적을 아예 배제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서비스의 품질만으로 은행원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더 중요한 건 시스템적인 접근이다.”

-어떤 시스템 말인가.
“한국은 상근 감사의 감시 역할은 확립돼 있는데 준법감시인 역할은 미국처럼 강하지 않다. 상근 감사와 일이 겹친다는 인식이 있고, 사내 인력이어서 감시와 견제에 한계도 있는 것 같다.”

-미국선 준법감시인이 어떻게 활동하나.
“일단 단체로 발송되는 메일은 준법감시인이 항상 참조인으로 포함된다. 사내의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감시한다고 보면 된다. 짜인 틀에서 벗어나는 업무는 모두 준법감시인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컨대 씨티은행에선 컴퓨터상에 입력돼 있는 문서 외에 따로 작성하는 비정형 문서는 준법감시인의 허가 없인 타이핑에 들어갈 수도 없다. 발각되면 최고 징계를 받는다. 대표적인 문서가 ‘계좌 예치 잔액 증명서’다. 시중은행에서 연고 등을 활용해 거짓으로 잔액 증명서를 받고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기가 종종 생긴다. 씨티은행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준법감시인 허가 없인 증명서 작성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시스템도 예를 들 수 있을까.
“명령 휴가도 중요하다. 미국 은행권에선 매년 모든 직원이 최소 10영업일 이상 붙여서 휴가를 떠나야 한다. 직원 휴식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기간 동안 해당 직원이 담당했던 일을 다른 직원이 맡아 하다 보면 비리나 횡령 같은 잘못이 발각될 수 있다. 내 일을 남이 들여다본다 생각하면 평소에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국내에선 ‘왜 휴가를 강제하느냐’는 노조 반발 때문에 5영업일까지만 의무화하고 있다.”

-사고 예방을 담당하는 업무다 보니 세월호 침몰도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겠다.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구명정이 쇠사슬로 엮여 있었다고 하더라. 평소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다’며 원칙을 안 지키는 걸 당연시했을 거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를 막으려 원칙과 규정이 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나도 외환 딜러로 일할 때 준법감시인들을 보면 ‘한가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신 제도와 법규를 잘 지켰다면 97년의 외환위기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침몰 사고를 보면 문화가 후진적이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아니다. 옛날엔 문화의 차이라 생각했는데 준법감시인이 되고 생각이 바뀌었다. 법 집행이 얼마나 강력하냐의 차이다. 미국·유럽에선 금융 사고가 나면 정말 무서운 벌금을 맞는다. 공무원 접대하다 걸리면 수천억원의 벌금을 물릴 정도다. 최근 JP모건 같은 경우에 불완전 판매로 수십조원 벌금을 물지 않나. 구명정 관리를 못한 게 걸리면 회사 문을 닫게 한다고 했다면 그런 일이 있었을까. 문제가 된 선장도 최고 형을 받아봤자 5년이라는데, 이런 식은 곤란하다. 법질서를 무시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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