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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쟁고아 일본서 성장 12년|약혼 앞두고 강제퇴거 위기|김유식 군 밀입국 혐의로 대촌 수용소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동경=김경철 특파원】한국전쟁고아로 12년간 단신 일본에 건너가 청년이 된 김유식 군(28·동경도 대전구 중륙향 1정목)이 밀입국 혐의로 강제 퇴거 령을 받고「오오무라」수용소에 수용돼 있으나 김 군을 구출하자는 운동이 요로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 군은 12년 전 일본에 밀입국, 그 동안 야간중학교에 다니면서 겨우 일본말을 해득할 수 있는 정도이고 약혼녀까지 결정돼 있으나 밀입국이라는 굴레 때문에 강제퇴거직전에 있어 김 군에게 법도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탄원서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김 군은 동경지방 재판소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청구소송을 내고 있으나 재판에 계류 중이어서 아직 수용소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 군은 50년 한국전쟁 때에는 고아였었다.
전쟁 때문에 부모를 잃어 15살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일본「오오사까」에 살고 있다는 이모 김갑순씨(56)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었다.
16살 때인 65년 김 군은「오오사까」에 밀입국, 말도 통하지 않고 할머니가 남겨 놓은 이모의 주소 한 장만 들고 이모 집을 찾아갔으나 이모는 없었다.
겨우 이모 김갑순씨의 친척집 양돈 장에서 일을 거들며 4년만에 이모를 찾게 됐으나 김 군은 자신이 밀입국자라는 사실조차도 모를 만큼 천진난만했었다.
이모의 큰아들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2년 전인 74년 이모가 외국인 등록문제를 이야기하자 처음으로 불법입국이라는 법망을 알고 동경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자수했다.
김 군은 지금까지 자신의 의사를 밝힐 만큼 글을 쓰거나 말이 통하지 않아 작년 4월 대전구립 화곡 중학 야간부에 입학하게 됐고 10개월 후에는 국민 교 4년 정도의 독서능력이 생겼고 작년 여름엔 약혼까지 하여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법체류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통보가 날아들었고 지난 1월에는 강제퇴거명령에 따라「요꼬하마」출입국 관리사무소 수용소에 수용된 후 3월엔「오오무라」수용소에 옮겨졌다.
이모 김씨는 조카의 강제퇴거명령 취소 정지가처분신청을 동경지방재판소에 내고 동경지방재판소는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강제송환의 정지를 인정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김 군은 야간학교마저 다닐 길이 없게 되어 학교선생이나 급우들이 김 군이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진정하고 있다.
변호인단 측은 김 군의 가석방을 신청하고 있으나 전망은 어두운 상태. 김 군의 수용과 동시에 다니던 학교 야간부 교사와 급우들은『겨우 시작한 인간의 최저교육을 계속하게 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재판소 당국과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에 제출하고 기타 야간중학 7개교도 이에 가세, 현재까지 교직원·졸업생 약 3백 명의 연명으로 탄원서를 두 번이나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김 군이 살고 있던 동네 중육향 1정목 주민 약 2백 명도 연명으로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김 군은 현재 수용소에서 차입해 주는 책으로 자습을 하고 있는 정도인데 김 군이 다니던 학교의 도축달낭 교사는『김 군은 일종의 난민이 아닌가. 당연히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왜 공부를 할 수 없게 하느냐』고 김 군의 석방을 진정하고 있으며 학교 동창생들도 『우수한 청년으로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일본의 법도 김 군의 앞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라고 김군의 석방을 진정하고 있다.
김 군은 특히 지난여름 야간중학 대항 배구시합에서 주력 선수였으나 빠지는 바람에 준우승, 교우들은 김 군의 출전을 아쉬워했다.
교우들은 매주 김 군이「오오무라」수용소에서 보내는 편지를 흑판에 게시, 김 군의 석방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에 있는 「아시아」인권「센터」도 김 군의 석방운동에 앞장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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