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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소년의 망령' 화폭에 담는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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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화가로 변신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소년’을 그림에 등장시켰다.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 자택에서 최근에 그린 ‘이라크 소년의 망령’이라는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디 어니언 캡처]

누더기 옷에 퀭한 눈을 한 소년이 손가락을 들어 한 남자를 가리키고 있다. 남자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림 속 남자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도 모두 다 조지 W 부시(68) 전 미국 대통령이다. 이 그림은 부시 전 대통령의 최근 작품으로 제목은 ‘이라크 소년의 망령’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의 풍자 언론 ‘디 어니언’이 화가로 변신한 부시 전 대통령의 최근 작품 10여 점을 공개했다. 이 ‘이라크 소년’은 똑같은 옷차림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또 다른 그림들에도 등장한다. 부모가 피 흘리는 소년을 안고 있다. 부모의 모습은 부시 전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여사를 닮았고 품에 안긴 소년 역시 누더기 옷 차림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소년이 테이블에 놓인 칠면조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를 바라보는 그림과 자신의 애완견과 함께 침대 위에 서 있는 그림도 그렸다.

 ‘디 어니언’은 이 작품들을 입수한 경위와 부시 전 대통령이 그림에 이라크 소년을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소년의 망령이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2003년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발발한 이라크전으로 인해 최대 19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중 13만 명 이상이 민간인으로 집계됐다. 이 언론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은 하루에 40~50장씩 그림을 그릴 정도로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2년 전 역사가 존 루이스 개디스의 권유로 윈스턴 처칠의 에세이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읽은 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유명 화가를 사사한 그는 애완동물을 시작으로 풍경화, 자화상들을 그렸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기념관에서는 지난 5일부터 그가 재임 중 만났던 각국 정상들을 그린 초상화 30점이 전시되고 있다. 6월 3일까지 진행되는 전시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 등이 걸려 있다.

전시회를 앞두고 미 N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나는 직업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회를 여는 게 꺼려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림을 배우면서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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