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회선 구해 착신전환 "여론조사 얼마든지 조작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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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론조사를 왜곡시키는 ‘착신전환(着信轉換)’이 6·4지방선거 경선을 오염시키고 있다. 착신전환이란 부재중 유선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휴대전화로 자동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다. 일부 예비후보자들이 지역 내 거주이주자·사망자 및 전화 해지를 앞둔 이들의 휴면(休眠) 유선전화를 대규모로 사들인 뒤 착신전환을 해놓고, 조직원에게 거짓 응답을 하도록 해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

 15일 중앙선관위원회가 새누리당의 당내 경선 여론조사 등을 왜곡한 혐의로 포항시장 후보자 A씨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중앙일보 4월 16일자 14면> A씨는 지난 3∼4일 여론조사 때 146개의 유선전화를 사 휴대전화 등에 연결시켰다. 이 중 미리 사놓은 유선전화 39대로 실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왔고, 11명이 착신전환한 휴대전화 등으로 나이를 20~30대로 속이고 응답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A씨 측은 여론조사에서 24.1%를 얻었다. 여기엔 착신전환한 휴대전화로 응답한 3.6%(여론조사 전체 1090명 중 39표)가 포함돼 있어 A씨는 이 숫자만큼 부당하게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7일 새누리당 경북도당이 실시한 컷오프 여론조사에서도 A씨 측은 133개의 유선전화를 개설한 뒤 착신전환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최종 후보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착신전환해 놓은 휴대전화 25대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왔다고 중앙선관위는 밝혔다.

 포항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남지사 경선후보인 이낙연 의원은 “경선 경쟁자인 주승용 의원 측이 ‘여론조사에 대비해 전화를 착신해 달라’면서 불법 문자메시지를 대량 발송했다”고 폭로했다.

 주 의원 측은 “개인이 지인에게 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 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선시행세칙으로 전화착신을 금지한 상태다.

 전주시와 익산시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예비후보자들이 지역 선관위에 경쟁후보들의 착신전환 의혹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여론조사 응답률은 보통 10% 안팎이다. 1000명을 조사할 경우 1만 명에게 전화가 간다. 서울이나 경기도 같은 광역단체에선 이런 방식이 통하기 어렵지만 인구가 적은 기초단체에선 1000개의 휴면 유선전화만 착신전환해 놓아도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착신전환을 한 뒤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때 가장 응답률이 낮은 20대, 30대로 나이를 속여 투표를 하곤 한다”며 “20, 30대엔 여론조사를 할 때 가중치를 주기 때문에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착신전환은 솔직히 서로가 묵인하면서 다 해오던 것 아니냐”고도 했다. 2010년 전북 완주군의 여론조사 부정경선 사건 수사검사였던 이석수 변호사는 “착신전환한 휴면전화는 응답률이 거의 100%이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 기초자치단체에선 얼마든지 순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채병건·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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