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향하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중앙 「매스컴」은 오늘로써 창설 11주년을 맞게 되었다. 「데케이드」(10년)·「플러스」·「알파」-. 짧으나마 이제 역사상의 한 매듭 위에 무한한 가능성의 인자인 「알파」를 더하게된 감회가 새롭다. 삼가 중앙 「매스컴」의 오늘을 있게 해준 국민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이날, 중앙「매스컴」은 국민여러분께 특별히 제언할 말이 있다. 다름 아닌, 우리는 지금 너나할 것 없이 80년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세계가족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높이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성찰할 때, 이런 자각의 제고 없이는 민족의 목탁되기를 자기한 본지의 사명은 완축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덕적 사회정신>
냉전의 50년대, 개발의 60년대, 그리고 해빙의 70년대-. 우리가 거쳐온 한세대 동안 인류는 너무도 값비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탐욕스런 자원 갈취와 맹목적인 경제주의가 초래한 사회정신 일반의 퇴폐를 보고서야 인류는 비로소 다가오는 80년대만은 지나간 세대에 비해 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각오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그 80년대는 우리도 이른바 『1인당 GNP 1천「달러」』로 상징되는 풍요의 기대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깊이 통찰해야겠다. 그렇다면 그 80년대의 일반적 특성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우선 다음과 같이 진단할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할 것 없이 인류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지금까지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거나, 알고서도 소외시켜온 도덕적 개념들이 서서히 각광을 다시 받는 시대상황이 전개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절제·중용·관용·성실·우애 등 이를테면 인륜의 기본이자, 동양인들에게는 너무도 비근한 가치개념들이 세계사적인 연관하에서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상황의 도래를 알리는 조짐들은 이미 역력하게 현재화해 가고있다.
우선 오늘의 국제정치의 향방부터 주의 깊게 살펴보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흑백논리만이 지배적이던 국제사회에 있어 전통적인 우적관계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 아니한가. 비록 남북한관계와 같은 특수적인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80년대 국제관계의 기조가 『적도 우방도 아닌 나라들』사이의 중도적인 호혜주의로 전환되리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하고는 사상과 신앙, 생활풍습이 전혀 다른 나라들과도 서로 터놓고 왕래하면서 우리의 주체적인 「아이덴티티」를 세계 속에서 키워야할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인간본위의 가치>
여기 안으로 국민 개개인의 시민적 자질을 높이고, 인류사회의 보편적 선이 최고도로 존중되는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세계에 대하여 우리의 국가적 신의를 심는 과업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가나하로 요청되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80년대 세계의 지향은 근본적인 변용을 나타낼 것으로 보아야한다. 무절제한 자원의 낭비와 무한정한 성장에의 추구를 기조로 했던 지금까지의 경제개발이념이 벽에 부닥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인류는 바로 그 때문에 빚어진 가공할 환경파괴와 자원전쟁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음은 주지하는바가 아닌가.
그래서 80년대 경제활동의 보편적 지향은 한결같이 개발에 따르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발전문제로 집중되리라는 것이 당연한 추세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아직도 모자란 국가적 힘의 축적과 사회적 균형과 또 그리고 복지의 증진문제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 하겠으나, 그렇다고 80년대 경제활동의 이념이나 기본지향에 있어 나타날 전기한 보편적 의지를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이야말로 이러한 근본문제에 대한 인식의 제고가 더욱 절실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한국에서처럼 경제활동의 기본목적과 사회적 가치사이의 괴리가 심하여 갖가지 부조리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80년대의 시대정신은 기본적인 자세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인간의 자주정복을 가능케 했고, 인간두뇌를 대신한 「컴퓨터」가 현대사회의 모든 구석을 조직화하고, 조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나, 그럴수록 그것이 인간의 본원적인 행복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어떤 공헌을 했느냐에 대한 의문은 심화일로에 있는 것이다. 여기 80년대의 시대정신은 인간이 과학기술의 시녀가 되고 사회운영의 이념과 원리가 기술의 수단으로 전락하고만 오늘의 본말전도를 바로잡아 다시 인간본위의 가치질서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정기·정도·정논>
본지가 창간이래 일관해서 「본질의 추구」와 「인간가치의 회복」을 외치면서 민족의 목탁으로서 정기·정도·정논의 도의 운동을 벌여온 취지도 바로 이러한 시대적 부름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세계는 우리가 결코 홀로 떨어져 살면서 우물안개구리식 자기존대를 가지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계임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 나라 안에 정의와 정도를 확립하고, 깨어진 균형과 조화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국가적 신의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데 힘을 합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겨레 앞에 「건전하고 품위 있는 신문」·「밝은 내일에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언론」이 되기를 자기했던 창립정신을 다시 한번 환기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가슴을 펴고, 80년대를 향해 떳떳하고 지혜로운 전진을 하자고 제창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