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소녀 강영희양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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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현해탄을 사이에 둔 한일 두 나라의 하늘 밑에서는 인간의 윤리와 반인간의 논리가 처절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부모 처자와 일가친척들이 오랜 헤어짐 끝에 다시 만나, 한데 부둥켜안고 울고 또 웃으면서 서로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다같이 함께 모여 살자고 다짐하는 감격의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죽기보다도 싫고 샘이 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훼방을 놓고 흙탕물을 끼얹는데 혈안이 되고있는 것이다. 모국방문길에 오르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조총련계의 방해공작과 폭행·중상·납치·협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정부의 결단에 의해 조총련계 동포들의 자유로운 모국방문길이 트인 것은 분단30년의 비극에 도전하는 최대의 장거였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뛰어넘은 인간승리의 찬가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북괴의 반인간적 궤변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은 쾌사였기 때문이다.
북괴는 언필칭 조건환경론이란 억지를 내세워 우리측의 인도적인 이산가족 재회 안을 외면해 왔다.
그러나 이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라. 조건환경론이란 것이 없어도 조총련계 동포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대한민국에 건너와서 대로를 활보하고 부모 처자와 얼싸안고 마음껏 한을 풀고있지 않는가.
저들은 자기들의 궤변과 억지가 무참히 허물어지자 이제는 공공연한 폭력적·범죄적 방법으로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지난2일 가족과 더불어 모국방문길에 오르려다 일시 납치되었던 14세 된 재일동포 강영희양의 경우는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할수 있다.
강양은 작년9월 한국에 살고있는 작은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루빨리 모두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고 적어 보냈었다.
나이 어린 영희양의 간절한 소녀의 기도는 바로 우리겨레 모두의 피맺힌 한과 원망을 대변하는 민족의 기도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눈물겨운 소녀의 기도와 소녀의 희망에 공산당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아래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아무리 눈물도, 피도 없고 양심도, 인정도 없는 공산당이라 할지라도 열네살 어린 소녀의 가슴에 그렇듯 시퍼런 비수를 박아 넣다니 생각할 수록 괘씸하고 기가 막힐 뿐이다.
일본에는 법도 없고 치안경찰도 없단 말인가. 무뢰한들은 동행한 아버지의 승낙도 없이 미성년자를 강제로 연행하고, 가족들의 인도요구를 묵살한 채 수십시간씩이나 인질을 그들의 아지트와 학교 안에 연금했었다. 그리고는 갖은 협박과 공갈로써 영희양의 모국방문을 강제로 포기케 만들었다.
이것은 일본의 국내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확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산당이 제아무리 발악을 하고 횡포를 부려도 영희 아버지의 결단을 꺾지는 못했으며, 혈육을 부르고 당기는 영희네 집의 인륜의 끈만은 절대로 끊어놓지 못했다. 영희양의 몸은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영희의 기도만은 지금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낭랑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다음엔 『반드시, 반드시 가고야 말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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