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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경비에 이상없다|8·18 사건 후 더욱 경계를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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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기는 독도. 울릉도에서 동동남쪽으로 92km 떨어진 한국의 최동단. 북위 37도14분18초, 동경1백31도52분23초에 위치한 동해의 고도에 학술조사단 (단장 원병오)을 태운 해경경비정이 닿은 것은 27일상오10시.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반세기이상을 시달려온 우리의 땅이기에 암벽 군데군데에 새겨진 『한국령』이란 세 글자에 더욱 가슴이 뭉클해진다.
독도를 지칭한 이름도 가지가지 가지도·물개섬·석도·송도·죽도·우산도·삼봉도· 「리앙쿠르도」도·양꼬섬·「부졸」도·「팔라다」도·「호네트」도·구인도 등등-.
독도는 2개의 큰 섬과 주위에 흩어진 30여개의 작은 기암으로 이뤄진 화산암도로 동쪽 것을 동도(해발1백57m, 둘레1.9km), 서쪽 것을 서도(해발1백57m,둘레2.8km)라 부르는데 면적은 모두 7만평 정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울릉군 남면도동 1번지.
경비초소로 오르는 길은 왼쪽엔 암벽. 바른쪽으로 남빚 물결이 맞닿은 천애.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길이다. 사투 1시간만에 오른 정상은 성채와도 같은 요새.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대해뿐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동대와「시멘트」에 채색된 태극기가 하늘을 향한 채 비에 젖고 있었고 분화구를 동으로 낀 곳에 이곳을 지키다 순직한 두 경찰관의 위령비가 잡초속에 반쯤 가려져 있다.
『우리들 독도경비대원 10명은 섬 주변을 수시로 순찰, 간첩의 침투를 철저히 봉쇄하고 있으며 특히 8·18사건 후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지요.』경비대장 임경규경장(37)의 말이다.
이곳 경비는 10명 1개조씩 매월 본토(울릉도를 이렇게 부른다) 경찰관과 교대된다.
16년동안 53차례(개월) 독도근무를 했다는 김진호순경(45)은 『지금은 눈감고도 섬 주위를 들 수 있을정도지만 한시도 긴장을 풀어본 적은 없다』고 경상도 사투리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아침6시 기상과 함께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동서남북으로 퍼지는 가운데 이들의 일과는 시작된다. 괴선박이 나타나면 무전으로 울릉본서와 근처의 경비정에 즉각 연락이 취해지고 상황에 따라 전투기까지 출동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다.
임경비대장은 그러나 장비가 좀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한다. 손전등과 쌍안경도 더 있어야겠고 동력거룻배도 마련되었으면 좋겠단다.
대원들의 독서열은 대단하다.『대통령전집』등 40여권의 도서가 비치돼있으나 이제는 닳을대로 닳아버렸다.
중앙일보사에서 마련해준 20여권의 신간단행본을 전해주자 권완기이경(22)은 한달은 심심챦게 됐다며『1914년8월』을 펼쳐든다.
막사 아래쪽의 8평 남짓한 오락실에는 탁구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으나 공도「배터」 도 없는 무용지물(?). 이따금 식탁으로 쓰일 뿐이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저녁식사후의 휴식시간. TV연속극에 재미를 붙인 탓이다. 이따금 유류절약을 이유로 TV시청이 제한되면 총각들은 고향처녀 생각으로 잠을 청한다고 최연장자인 김순경이 귀띔해준다.
이들에겐 또 하나의 낙이 있다. 해마다 4, 5월이면 미역이랑 청각을 캐러 이곳에 들르는 10여명의 해녀들과 얘기를 나누면서「홀아비」의 외로움을 달래보는 것이다. 이따마금씩 서도 바위틈에 걸려있는 텅 빈 어민보호소를 내려다보며 씁쓰레 웃어보기도 한다.
이들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식수난. 빗물을 저장했다가 끓여마신다. 모자라는 식수는 서도의 샘(65년11월 발견)을 이용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본토에서 실어온다. 대원들에겐 공통된 염원이있다. 1인당 월1만2천원씩 지급되는 돈으로 쌀과 부식과 발전·취사용 기름을 사 쓰긴 벅차단다.
그래도 대원들의 사기는 높다. 제나라 땅이기에「카빈」을 움켜쥔 대한경찰의 눈빛은 동해를 향해 빛나고 있는 것이다.<독고에서 신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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