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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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짐승이 한가지 행동을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신경이며 감관이 작용해야 한다. 고등동물일수 록에 동원되는 신경의 수도 늘어난다.
사람이 움직일 때에는 수만 개의 신경이 작용한다. 동기며, 원인도 복잡하기 마련이다. 지능·양식·이성 등은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능이 낮은 사람의 행동은 알아내기 쉬워도 지능이 높은 사람의 행동은 여간해선 헤아리기가 힘들다.
더구나 이번에 북괴가 판문점에서 저지른 만행은 우리네의 이해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의 의도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상궤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을 극도로 자극하면 미국이 보복조치를 쓸것이다. 그러면「스리랑카」에서 열리고 있는 비동맹회의에서 동정을 얻게 될 것이다. 또 그러면 잘만 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그들의 주장이 관철될 것이다.
이런 단순사고가 판문점 만행을 저지르게 했을 것이라고「뉴요크·타임스」의 19일자 사설은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도끼 외교』라고 표현했다.
하나, 북괴 쪽의 저의는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북괴는 어제 하오5시를 기해 전군에 전투태세명령을 내렸다. 혹은 전쟁재발을 위한 구실을 만들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북괴가 전쟁준비를 위해 광분해 왔더라도 온 세계를 상대로 싸울 수 없다. 그것은 6·25가 입증한바 있다.
그러니까 뭔가 그럴싸한 발뺌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눈 하나 까딱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생리인 것이다.
외교란 양국간의 이해의 상충을 되도록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있다. 또 이런 성의와 노력이 양자간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북괴는 지금까지 외교라는 평화적인 대화의 통로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를 일삼아 왔다.
그네들은「외교」그 자체의 존재이유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교가 곧 폭력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도끼외교』라는 표현을 이렇게 본다면 북괴의 본성을 꿰뚫은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사태는 앞으로 며칠 사이가 큰 고비가 될 것이다. 다만 이번 만행으로 북괴가 더욱 세계의 여론을 등지게 된 것만이 우리에겐 다행스럽다.
너무나도 원인이나 동기가 뚜렷하고 단순할 때에는 그만큼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은 강력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미국과 비동맹국들은 이러한 비인간적 만행에 말려들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양식을 갖고 있다』고「뉴요크·타임스」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만행을 저지를 만큼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북괴가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그게 우리에게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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