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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의연|기마 인물|김정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 민족은 일찍 청동기시대부터 기마의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 마구에 의해 밝혀졌다.
이 시대의 마구는 입에 물리는 재갈 (함), 목에다는 방울 (마령·마탁), 머리에 장식하는 마면, 운주와 비슷한 장식에 쓰인 동포 등 다양한 것이 있었다.
최근 요동 지방의 정가주자 유적에서도 청동제의 함과 표가 출토되고, 동포 중에 마두에 장식으로 쓰인 증거가 발견되었다.
요령 지방은 고조선의 청동기 문화가 꽃피었던 요람지였다.
우리 민족이 「알타이」족에 속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인데, 그 원주지는 「시베리아」의 남쪽, 「알타이」 산맥과 「사얀」 산맥의 동쪽 초원지대였다. 「알타이」족은 이 초원 지대에서 유목을 주로 하고, 농경을 주로 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켰다. 특히 「알타이」 지방은 동광이 풍부하고 야동술이 발달하여 남「시베리아」의 「예니세」강 상류 지역과 「바이칼」 호수 언저리에 발달한 청동기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알타이」족은 동남쪽으로의 이동의 물결에 따라 남「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도 전파하였던 것이다. 「알타이」족의 이 이동의 한 갈래가 요령 지방과 한반도에 이르러 북방「아시아」의 청동기 문화의 전통 위에 독특한 청동기 문화를 발달시켰던 것이다.
위와 같이 「알타이」족은 본래 유목을 주로 하여 말 타고 활쏘기를 잘 하였다.
「알타이」족이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자연 조건에 따라 농경이 주가 되었으나 과거의 기마의 전통은 상당히 뒷날까지 전하여졌다.
그리하여 삼국시대의 유적에서 마구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마구에 등자가 사용되고, 운주·행엽 등 장식이 많이 만들어지고, 말안장과 장니 등도 사용되었다. 5세기초에 세워진 유명한 광개토왕릉비에도 신라에 침입한 왜와 임나가라의 연합군을 치기 위하여 광개토왕이 보기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기병이 중요한 소임을 다하였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마상기는 1924년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된 것인데 재갈·운주·행엽·등자·장니 등의 착장의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조각의 수법으로서도 우수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산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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