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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안재욱, 안재욱 … " 중국·일본서 온 여성들 눈물의 환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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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일 뮤지컬 ‘태양왕’ 첫 공연에서 주인공 루이 14세를 연기한 안재욱. 그가 무대에 서는 날엔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때부터 팬이 된 일본인·중국인 관객들이 객석의 20%를 채운다. 그와 번갈아 루이 14세를 연기하는 배우는 신성록이다. 그 역시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에 출연한 덕에 해외팬이 늘고 있다. 뮤지컬 ‘태양왕’ 공연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6월 1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흐름, 변화의 현장을 찾아가는 ‘트렌드&’을 시작합니다. 첫 순서는 ‘뮤지컬 한류’입니다.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장에선 원정 관람을 온 일본인·중국인 여성 관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해외 무대에 진출해 현지 관객을 모으고, 라이선스를 수출해 현지어로 감동을 전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합니다. 한류 스타가 끌고 작품성이 밀어주는 뮤지컬 한류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뮤지컬 ‘태양왕’ 첫 공연이 열린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막이 내리자 객석의 분위기는 완전히 둘로 나뉘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커튼콜을 지켜보는 관객들과 열광적인 환호와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중국 주부 2명 ‘태양왕’ 100인분 식사 제공

 사실 이날 공연에서 주인공 루이 14세 역을 맡은 안재욱은 기대만큼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노래를 부르며 몇 차례나 음정을 불안하게 짚었고, 연기도 다소 어색하게 이어졌다. 앉아있는 일부 관객들의 표정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관객들의 눈길은 온통 안재욱을 향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서 원정 관람을 온 30∼40대 여성 관객들이었다.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머리를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은 안재욱이 재활에 성공, 다시 무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해서일까. 극 전개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며 보는 관객도 여럿 눈에 띄었다.

 ‘태양왕’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에 따르면, 안재욱이 출연하는 날엔 객석의 20% 가량을 중국·일본인 관객들이 채운다. 10일 공연에 앞서 중국에서 온 30대 주부팬 2명이 배우·스태프들의 저녁 식사를 위해 100인분 뷔페 음식을 제공했고, 한 일본인 여성 팬은 목캔디 100개를 포장해 들고왔다.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시절부터 계속된 ‘팬심’이다.

 ‘태양왕’은 국내 관객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대만 등 해외 극장들과 초청 공연 협의에 들어갔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안재욱과 함께 루이 14세에 더블캐스팅된 신성록 배우가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 중화권 인지도가 높아져 ‘태양왕’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K팝에서 시작된 한류의 바람이 뮤지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연결고리는 한류 스타다.

아이돌 내세운 ‘삼총사’ 일본서 6억 순익

일본 현지에서 뮤지컬 한류 바람을 일으킨 배우들. 위부터 유준상·준케이(2PM)·이창민(2AM). 이들은 뮤지컬 ‘잭더리퍼’와 ‘삼총사’의 일본 공연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준케이와 이창민이 출연한 지난해 ‘삼총사’ 일본 초연은 개막 전 티켓 판매만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매출 기록을 세웠다. [사진 충무아트홀·엠뮤지컬아트]

 지난달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일본 도쿄국제포럼 극장에선 뮤지컬 ‘삼총사’가 동시에 공연됐다. 유준상·신성우·김민종·이건명·엄기준·성민(슈퍼주니어)·준케이(2PM) 등 멀티 캐스팅된 배우들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가며 무대에 섰다.

 2009년 국내 초연한 ‘삼총사’는 지난해 8월 처음 일본 공연을 했다. 규현(슈퍼주니어)·이창민(2AM)·송승현(FT아일랜드)에 예은(원더걸스)까지 가세한 일본 공연 캐스팅 명단이 발표되던 날, 뮤지컬 ‘삼총사’는 야후 재팬 검색어 7위까지 올랐다. 또 6월 도쿄 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일본 취재진 200여 명이 몰려왔다.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2000여 석 규모의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24차례 진행된 ‘삼총사’ 공연의 평균 객석 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제작사 엠뮤지컬아트는 6억여원의 순수익을 거뒀다.

 엠뮤지컬아트는 2012년 9∼10월엔 뮤지컬 ‘잭더리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2009년 국내 초연 당시 주연 안재욱을 보러온 일본인 관객이 객석의 3분의 1을 채우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추진한 일이었다. ‘잭더리퍼’는 지난해 11월 안재욱·지창욱·성민·준케이·송승현 등을 주연으로 캐스팅해 요코하마 에서 일본 재공연을 했고, 당시 공연 실황이 2400석 규모의 오사카 오릭스 극장에서 네 차례 상영되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을 접한 해외 관객이 늘어나면서 기존 한류 스타에 집중됐던 팬층이 점차 이건명·김법래·윤형렬 등 전문 뮤지컬 배우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건명은 지난달 27∼28일, 윤형렬은 지난 6일 각각 도쿄와 고베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김법래·민영기 등도 일본 콘서트 일정이 잡혀있다.

 한류 스타들이 뮤지컬 흥행을 좌우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몇몇 스타를 두고 제작사들 간에 경쟁이 붙으면서 개런티가 회당 수천만원 선으로 치솟아 제작비 부담이 커졌고 ▶빡빡한 아이돌 가수의 스케줄에 맞추려고 한 배역에 최대 7명까지 멀티 캐스팅하면서 배우에 따라 작품 수준이 들쑥날쑥인 경우도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계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에서 공연한 뮤지컬 ‘천번째 남자’ ‘썸머스노우’ 등을 두고 “한류 스타를 내세워 만든 학예회 수준의 작품”이라며 “배우들 덕에 잠깐 관심을 끌긴 했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한국 뮤지컬이 스타 캐스팅에만 의존하고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해외 시장 개척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라이선스 계약 통해 작품 자체 수출도

 한국어 투어 공연 중심으로 진행된 뮤지컬 한류 현상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작품 자체를 수출하자는 움직임이다.

 지난 1월 17일부터 2월 27일까지 도쿄 등 일본 7개 도시에서는 한국 창작 뮤지컬 ‘셜록 홈즈1:앤더슨가의 비밀’의 일본어 공연이 펼쳐졌다. 일본의 대형 뮤지컬 제작사인 ‘토호예능’이 국내 제작사로부터 라이선스를 사서 만든 작품이다. 일본의 유명 뮤지컬 배우인 마츠모토 사토시와 이치로 마키가 홈즈와 왓슨 역을 맡았고, 아사히·요미우리 신문 등에서 리뷰 기사로 다뤘다. 평균 객석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뮤지컬전용관으로 운영된 도쿄의 아뮤즈뮤지컬씨어터에서 ‘풍월주’ ‘김종욱 찾기’ 등 8편을 공연한 CJ E&M 박민선 공연사업부장은 “아이돌 스타 없이 일반 한국 배우들만으론 일본내 흥행에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젠 작품의 라이선스를 팔아 현지화시키는 단계로 뮤지컬 한류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초연 중인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 해외 제작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검토 중이다. 충무아트홀 김희철 기획본부장은 “첫 공연 이전부터 일본·중국 제작사들의 문의가 이어졌다”면서 “특히 일본에선 4개 제작사가 동시에 계약 희망 의사를 밝혀와 이들 회사 중 제작능력이 나은 곳이 어딘지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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