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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렌즈엔 온기가 흐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0호 26면

저자: 구본창 출판사: 컬처그라퍼 가격: 1만4000원

“사진가들의 시선은 눈앞에 실재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경험할 수 없는 관점의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사진 속 인물을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

지난해 11월 S매거진에 실린 기사 일부다. 인물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설인데, 당시엔 글귀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넘겼다. 하나 지금 생각해 보니 여러 번 곱씹어 볼 말이었다. 특히 ‘경험할 수 없는 관점의 기술을 제공’한다는 부분이 정곡을 찔렀다. 좋은 사진이 뭐냐, 훌륭한 사진가가 누구냐를 가를 수 있는 기준은 이 ‘기술’이 얼마나 탁월하냐에 달렸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된 건 국내 대표 사진가인 구본창(61)이 그의 사진 인생 30년을 정리하며 써내려 간 에세이를 통해서다. 그가 하고픈 말은 분명하다. 사진가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생명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깃든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라는 것. 스스로도 이것이 평생 셔터를 누른 방식이었다고 고백한다. 모두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누구나 포토샵으로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된 지금, 과연 전업 사진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이 아닐까 싶다.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 보면 무슨 말인지 확실히 감이 잡힌다. 박제된 곤충들을 한지에 인화한 ‘굿바이 파라다이스’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한때 생명을 품었던 것들이 이 낙원에 안녕을 고하면서 역설적으로 삶 너머의 진짜 낙원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달까.” 갈라지고 조각난 비누를 골라 찍은 ‘비누’ 시리즈는 좀 더 심오하다. “비누는 자기 몸을 녹여 거품을 만들고 그것으로 때를 씻어낸다. 결코 멈추는 법 없이 끊임없이 소멸한다. 살아가는 행위가 곧 죽어가는 행위다. 그러나 비누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런 스토리를 찾아내려면 피사체와의 교감은 필수라는 게 그의 지론인데, 그 방식이 보통 사람이 보기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다. 그는 백자를 촬영할 당시엔 큐레이터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백자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속삭였단다. “어쩌다 네가 여기까지 왔느냐…. 네 영혼은 사진에 담고 싶으니 너도 꼭 응해야 한다.”

이쯤에서 궁금한 건 늘 똑같다. 대체 그의 예술가적 감수성과 영감의 원천이 무엇일까. 그에게서 이를 굳이 찾자면 유년 시절의 열등감과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워낙 내성적인 성향인 데다 6살 터울의 형과 늘 비교당했던 소년. 그에게 명문 중학교를 1등으로 입학할 정도의 수재인 데다 웅변대회 상을 모조리 휩쓸고 다닌 형의 남자다움은 넘보지 못할 벽이 됐다.

어릴 적 깨진 그릇, 마당에 핀 꽃처럼 버려지고 덧없는 것들을 찾고 모으는 애착을 보인 이유를 그는 “나도 버려졌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털어놓는데, 그 먹먹함과 울림이 어쩐지 크다.

사진가의 고백과 회고 속에는 독자에게 전하는 당부가, 아니 바람이 슬며시 녹아 있다. “찰나의 대상물을 촬영할 때 내가 느끼는 교감은 일정량의 에너지로 필름에 스며든다고 나는 믿는다. 만약 어떤 사진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면, 안에 담긴 대상에서 비롯해 필름 속으로 숨어든 에너지가 인화지에 혹은 책에도 조금씩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피사체와의 교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결국 세상과의, 사람과의 소통이기 때문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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