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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6화>암 환자, "여한이 없다"는 건 거짓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버지가 진행하려다가 취소한 임상시험의 동의서 일부. [이현택 기자]

본인은 "전이성 또는 재발성 식도 편평세포암 환자에 대한 OOO의 제2상 임상시험"에 관한 본 연구의 목적, 방법, 기대효과, 가능한 위험성, 대체 치료 방법의 유무 및 내용 등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으며, 모든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충분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읽던 구절. 얼마 전 진행하려다 못하게 된 임상시험을 위한 동의서의 일부분이다.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머릿속에는 한 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도암이 전이됐는데 기존에 있는 약을 모두 써버린 사람 48명을 대상으로 신약 임상시험을 하는데, 현재 47명이 시험에 돌입했고 딱 한 자리가 남아있다는 그 사실 외에는.

한 자리 남았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버지 역시 치료 방법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에 만족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투병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검증이 덜 된 신약을, 그것도 임상시험으로 아버지에게 투약을 해야 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물었다. 안 물을 수가 없었다. "임상시험은 사실상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는데, 유언 있어요?"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말했다. "유언이랄게 뭐가 있어.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지."

그러고 나서는 임상시험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이제 각오는 했으니, 아버지는 치료에, 나는 응원에 온 에너지를 불태우자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 힘이 되고, 맛있는 음식 함께 먹는 것,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것 정도였지만,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이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암이 위로도 일부 전이가 된 것이 발견돼 위암 항암제를 투여할 수 있었다. 임상시험 안 해도 됐다. 동의서를 두고 부자(父子) 간에 했던 비장한 대화는 괜히 머쓱해졌다.

임상시험은 안했지만, 그 때 아버지의 눈빛에서 무언의 여한, 회한을 느꼈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 역시 속으로 삭히는 한이 많을 것이다. 암 수술과 항암치료에 이어, 하고 있던 사업까지 잘 되지 않아 빚더미만 남겨야 했다. 지난 30년간 일궜던 사무실이 사라지는 그 마음은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느 자영업자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별 말 없이 다리를 주물렀다.

물론, 아버지와 내가 엉엉 수준을 넘어 펑펑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다. 2차 재발로 폐 수술을 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입원을 하기 전 병원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으려고 앉았다. 국밥 두 그릇을 주문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서글프게 울었다. "아프고 서럽다"고 했다. 나도 서러웠다.

암환자에게 '여한'이란

사실 오늘 할 이야기는 '여한'이라는 말에 대한 것이다. 사실 이 단어는 이전에 아버지가 "네가 결혼했으니 여한이 없다"고 썼던 단어이기도 하다.

여한(餘恨)이 없다는 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한이 없을 수가 있나. 개인차는 있겠지만 삶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없을까 싶다. (물론 성직자 등 예외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삶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은 있지 않을까.)

특히나 어르신이 돌아가셨을때 자식이 결혼을 했느니, 손녀를 보고 떠나셨느니, 나이가 많으셔서 천수를 누리셨느니 등 운운하면서 다른 사람이 고인의 여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부모가 90세에 돌아가시든, 100세에 돌아가시든, 안타까운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을 직면하고 있는 암환자들에게 역시, 여한이 없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여한을 줄여나갈 수는 있다. 암 환자를 치료하거나 상담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서적 지지'가 이런 맥락 아닌가 싶다. 암 환자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또 병실에서 함께 있어보면, 암 환자에게 필요한 4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정서적 지지 아닌가 싶다.

나머지 3가지는 치료, 일상, 비용 등이다. 물론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암에 완치란 없는데다, 언제 재발할지, 어떻게 전이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의 상황 속에서 환자에게는 마음의 치유 역시 경시할 수 없는 가치다. 간병 또는 간호, 치료를 지켜보는 제반 과정에서 타들어간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버지 잘못 아닙니다"

암 환자의 여한을 줄여주기 전에, 가족 스스로의 한을 푸는 것이 우선이다. 금전적인 문제나 가족 간의 불화는 단골 메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다. 나 역시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수백 차례 아버지에게 섭섭한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미움은 짧고, 과거와 현실은 길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난 3년 여 간의 고통보다 더 긴 시간의 행복이 있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학원에서 보냈던 시간들, 기자가 된 이후 가족들과의 대화.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 보면 아버지는 내게 아픔을 주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다. 사업 잘 해보려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불경기에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다 망했겠지. 아마 다수의 자영업자 부모는 다 이런 마음일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나도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집안일을 핑계로 술을 먹으면 처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는 가슴 아픔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슬그머니 귀가를 해왔다. 그리고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면서 전화를 걸었겠지. 아버지는 대부분 답이 별로 없었고,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는 짧게 "미안하다 내 아들"이라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물론 아버지 역시 형제자매 간의 불화가 있었다. 불화가 완전하게 없는 가족이 몇 이나 될까.

암 환자에게는 치료 이전에 자존감 회복이 중요하고, 자존감 회복 이전에 가족 및 스스로와의 화해가 필요하다. 암 환자의 심리 상태 변화라는 부정-분노-우울-타협 등의 4단계를 생각해 보면, 2단계인 분노를, 그 분노를 구성하는 각종 요인 및 여한과의 화해, 용서 같은 것 없이는 진정한 치유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의사들이 암 재발의 주요 원인으로 주저없이 스트레스를 꼽지 않는가.

그런 이유에서 나는 신혼집의 가훈을 '용서와 화해'로 지었다. 물론 나 역시 아직도 마음 속에 완전한 용서를 찾지 못했다. 아버지도 나도 얼른 진짜 용서를 찾고 암을 포함한 모든 것+사람과 화해를 해야 할텐데.

* ps. 지난 7일에 발행된 '불효일기' 3화를 본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의 부모님께 대구탕을 포장해서 갖다 드리고 싶은데 어디서 파느냐는 것이었다. 독자님의 부모님도 얼른 쾌유하시기를 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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